'고환율 방어' 정부 대응에 외화대출 확대 가능성
환율 오르면 원화 환산액 커져 건전성 지표에 악영향
연말 결산에도 환율 반영…영향에 촉각
연말 1470원대를 웃도는 고환율이 지속되면서 은행권의 부담이 커지는 분위기다. 외화대출 규모가 4분기 들어 늘어난 데다, 정부의 '고환율 방어' 대책으로 추가 확대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잡히지 않는 원·달러 환율 수준은 연말 결산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외화대출 잔액은 지난달 말 기준 76억6949만달러로 집계됐다.
외화대출 잔액은 4분기 들어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3분기의 마지막 달인 9월 65억5121만달러까지 주저앉았으나, 10월 68억5212만달러로 다시 늘었고 11월에는 추가 확대됐다. 11월 잔액은 9월 말과 비교하면 11억1828만달러 늘었다. 전일 주간거래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1480.1원)로 환산하면 약 1조6552억원 늘어난 규모다. 12월 들어서는 소폭 감소한 것으로 확인되나 여전히 70억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정부가 고환율 대책의 일환으로 외화대출이 가능한 범위를 확대하면서 외화대출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다. 앞서 정부는 지난 18일 수출기업의 국내 시설자금에 한해 허용했던 원화용도 외화대출을 국내 운전자금 등 경영상 목적까지 확대한 바 있다. 이는 수출기업이 달러로 대출을 받아 원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국내 외환시장에 달러 유입을 유도해, 환율 상승 압력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다.
문제는 고환율 시기에 외화대출이 늘면 은행 입장에서는 건전성 관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대출은 차주 신용도 등 위험가중치를 부여해 위험가중자산(RWA)을 산정한다. 이 중 외화대출은 원화로 환산한 금액을 기초로 하기 때문에 환율이 오르면 원화 환산액이 늘어 RWA도 커질 수밖에 없다. 이는 RWA를 바탕으로 계산되는 자기자본비율(BIS), 보통주자본비율(CET1) 등 은행 건전성 지표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시설자금과 달리 용도를 특정짓기 어려운 운전자금이 구조상 가중치도 더 높다"고 말했다.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도 원화용도 외화대출 범위를 운전자금까지 확대하는 것은 부담이라는 반응이 나온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운전자금은 사업 운영에 쓰이다 보니 굉장히 포괄적이고 사용처가 넓다"며 "모든 대출은 자금이 실제 사업 용도로 쓰였는지 사후관리를 하도록 돼 있는데 운전자금은 상대적으로 증빙이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로 인해 사후점검 책임이나 충당금을 추가로 더 쌓는 등 리스크 관리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잇따라 고환율 대책을 내놓는 등 추세를 꺾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한번 올라간 환율 수준은 쉽게 내려오지 않고 있다. 높은 환율 수준은 외화자산 비중이 큰 은행의 연말 결산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 연말 결산은 12월 마지막 거래일의 최초고시환율(매매기준율)을 적용하는데, 이는 은행 재무제표와 건전성 지표는 물론 내년 사업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금융권 관계자는 "해외 점포가 쌓아야 하는 충당금 부담, 헤지 비용을 고려하면 실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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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남은 6거래일 동안 환율 수준을 최대한 낮추기 위해 수단을 총동원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장에서는 정부의 노력에도 연말 종가는 1475원 안팎에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는 27년 만에 가장 높았던 지난해 12월30일 1472.5원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백석현 신한은행 S&T센터 연구원은 "고환율을 좌시하지 않겠다는 외환당국의 존재감이 상단을 방어하고 있지만 환율 수준만큼의 효과까지 갈지는 의문"이라며 "국내 수급은 여전히 달러 매수가 우위로 판단되고, 프랑스와 일본 국채가격 하락 등 대외 여건도 달러화가 상승하는 흐름에 있다"고 말했다.
김혜민 기자 hmi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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