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매매계약 10건 중 9건은 '대출 가능' 구간
정부가 '거주 목적 외' 주택 보유에 대한 세제 혜택을 단계적으로 회수하겠다고 밝히면서 서울 아파트 매물이 빠르게 쌓이고 있다. 다만 늘어나는 매물만큼 거래가 따라붙지는 못하는 모습이다. 대출 규제로 매수 여력이 제한된 데다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 종료일이 다가올수록 매물이 늘어 가격이 추가 하락할 수 있다는 관망 심리가 확산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18일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전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물은 6만4231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를 끝내겠다고 밝힌 지난달 23일 대비 14.2% 증가한 수치다. 최근 열흘 사이 매물이 7.5% 급증하며 시장에 물량이 적체되는 양상이다.
매물이 시장에 나오는 속도는 정부의 보완책 이후 한 단계 빨라졌다. 정부는 지난 10일 다주택자의 퇴로를 열어주는 차원에서 토지거래허가구역 내 실거주 의무를 한시적으로 유예하고 잔금·등기 기간을 연장했다. 이후 5일간(10~15일) 매물 5833건이 쏟아져 지난달 23일 이후 전체 증가분의 절반 이상이 이 기간에 집중됐다. 토지거래허가 심사에 통상 15~20일이 소요되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계약 마지노선은 오는 4월 중순이어서 시간이 갈수록 매도 압박은 더 커질 전망이다.
고가 매물은 쌓이고 거래는 외곽에서
고가 아파트가 밀집한 한강벨트를 중심으로 매물 증가세가 뚜렷하다. 아실에 따르면 지난달 23일 이후 이달 17일까지 매물 증가율은 성동구(36.5%), 송파구(33.7%), 동작구(26.6%), 광진구(26.4%), 강동구(24.3%), 마포구(23.1%), 서초구·용산구(각 18.9%) 순이었다. 반면 강북구(-3.9%), 금천구(-1.8%)는 오히려 매물이 줄었고, 구로구(0.6%), 도봉구(2.4%) 등은 증가 폭이 미미했다. 보유세 인상 우려까지 겹치면서 고가 주택 보유자들이 먼저 반응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장에서도 매도세 확대가 감지된다. KB부동산에 따르면 2월 둘째 주 서울 아파트 매수우위지수는 85.3으로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KB국민은행이 일선 중개업소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해 산출하는 이 지표는 100을 밑돌수록 '살 사람'보다 '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매물은 늘어나는데 이를 받아줄 매수자가 줄고 있다는 뜻이다.
고가주택 지역에 매물이 쌓이는 사이 실제 거래는 다른 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 분석 결과, 전날 기준 2월 서울 아파트 매매 계약 975건 중 87.2%(850건)가 대출 한도 활용이 가능한 '15억 원 이하' 구간에서 이뤄졌다. 이 비중은 10·15 대책 직후인 지난해 10월 16~31일 64.6%에서 11월 73.2%, 12월 81.5%, 올해 1월 80.2%로 꾸준히 높아졌다. 올해 서울 구별 매매 건수도 노원구(671건), 성북구(395건), 강서구(373건), 구로구(355건) 순으로 중저가 외곽 지역에 집중돼 있다.
15억원을 기준으로 거래가 갈리는 건 대출 규제 때문이다. 현재 수도권 규제지역에서 15억원 이하 주택은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최대 6억원이지만, 15억원을 초과하면 한도가 2억~4억원으로 줄어든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6억원 한도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고려하면 실제로 다 받기는 어렵다"며 "전세보증금을 보유한 수요자를 중심으로 6억~10억원대 매물에 매수세가 유입될 것"이라고 했다.
매물은 고가 지역에서 나오는데 살 사람은 중저가만 찾는 엇박자가 나는 모습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현 상황에서 대출 없이 서울 상급지 주택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의 현금 부자뿐"이라며 "정부도 가계부채 관리 차원에서 대출 규제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실수요자가 늘어난 고가 매물을 소화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매물 급증 통계, 착시일 수도"…신중론 제기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가 시장의 매물 잠김을 해소하는 데는 기여했으나, 거래 정상화까지는 한계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현석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정부가 퇴로를 열어주면서 매물이 증가하는 등 시장 진정 효과가 나타난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매물이 증가했다고 거래가 증가하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고 했다. 이 교수는 "거래 증가로 이어지려면 수요 규제나 대출 규제 완화가 병행돼야 하는데, 현재 시장 여건상 그 정도까지 규제를 풀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했다.
서 교수는 "결국 '퇴로를 열어줬다'는 선언적 의미에 그칠 뿐 실질적인 거래 증가로 이어지기엔 시장의 매수 여력이 부족하다"며 "세금 부담보다 자산 가치 상승 기대가 클 경우 일부 핵심 입지 매물은 다시 회수될 여지도 있다"고 했다.
매물 증가 폭이 실제보다 부풀려졌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 교수는 "우리나라는 매물에 대한 정부 공식 통계가 없다"며 "집주인 한 명이 여러 중개업소에 동시에 매물을 내놓는 경우, 민간 플랫폼 데이터상으로는 물량이 중복 집계돼 실제보다 부풀려질 수 있다"고 했다.
매매 매물 14% 늘 때 전·월세는 11% 줄어
정부 정책의 사각지대는 전세시장이다. 다주택자들이 '전세 끼고 버티기' 대신 '매물 던지기'로 선회하면서 임대차 시장 물량이 감소하고 있는 것이다.
아실 집계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월세 물량은 지난달 23일 4만2784건에서 이달 17일 3만7698건으로 11.09% 감소했다. 같은 기간 매매 매물이 14.2%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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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교수는 "보유세 강화 기조와 다주택자 압박은 주택 보유 비용을 높이고, 이 비용이 전월세 가격으로 전가될 수 있다"며 "임대차 물량이 줄어들 경우 임대료 상승과 전세 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고 했다. 서 교수 역시 "물가 상승과 유동성 공급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규제만으로 가격을 억누르면 그 부담은 결국 가장 약한 고리인 전세 시장으로 옮겨가게 된다"고 했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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