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뇌물을 받았으면 그 금액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하는가. 세법은 이를 '기타소득'으로 보아 과세한다. 공무원이 돈을 받고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다른 공무원의 직무처리에 영향을 미쳤을 때 적용되는 알선수재 및 민간인들이 부정한 돈을 받았을 때 적용되는 배임수재 등에 대해서도 현행 세법은 기타소득으로 과세한다는 규정을 두고는 있다.
그런데 뇌물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형법에 따라 몰수나 추징이 된 경우에도 세금을 부과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일반적으로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고 하지만, 돈을 건넨 자에게 다시 돌려주었거나 국가가 몰수 또는 추징한 경우에는 해당 공무원의 수중에 돈이 없기 때문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주장이다.
종전의 판례(2002두431)는 "뇌물 형사사건에서 추징이 확정돼 집행된 경우에도 소득세법상 과세대상이 된다"고 했다. 예를 들어 10억원의 뇌물을 받은 공무원이 있었는데 이를 모두 검찰에 의해 몰수 또는 추징당했다면 어렵사리(?) 얻은 그 10억원은 현재 공무원 수중에는 남아 있지 않게 된다. 그럼에도 세법은 문제의 10억원은 뇌물을 준 자에게 돌려준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과세했다 (몰수나 추징된 돈은 국고에 귀속될 뿐이다).
판례의 논리를 살펴보면 몰수나 추징이란 뇌물범죄행위가 형사처벌됨에 따른 부가적 형벌이지 뇌물을 준 자에게 돌려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세법도 뇌물에 대해 징벌적 과세를 하는 것 역시 부당하지는 않다는 뜻이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뇌물을 받은 공무원은 형법상 뇌물수뢰죄로 처벌받고, 공무원법에 따라 직장에서 쫓겨나며, 여기에 세금까지 납부하는 등 3중 4중의 처벌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뇌물범죄에서 몰수나 추징을 하는 것은 범죄행위로 인한 이득을 박탈해 부정한 이익을 보유하지 못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으므로, 몰수나 추징이 있었다면 이는 위법소득에 내재돼 있던 경제적 이익의 상실 가능성이 현실화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해 세금추징은 불가능하다고 판결했다(2014두5514).
쉽게 말해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어야 하는데, 뇌물을 국가가 몰수나 추징해 갔다면 소득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번 판결은 법적(가중처벌) 또는 경제적(과세대상 소득의 부존재) 측면에서는 일정 부분 평가받을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들의 부패를 바라보는 국민 정서적 관점에선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본다.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가 발표한 우리나라의 2014년도 부패지수는 175개국 중 43위를 차지할 정도로 창피한 수준이다. 자칫 이번 판결로 인해 뇌물을 받고 난 뒤 들키면 돌려주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사고가 번질까 우려된다.
뇌물(賂物)의 '뇌(賂)'는 '조개 패(貝)'에 '각기 각(各)'이 합쳐져 만들어진 글자다. 조개껍질이 화폐로 사용되던 시절, 공적인 용도가 아닌 사적인 용도로 사용된 재화란 뜻이다. 일찍이 성서에서도 '몰래 주는 선물은 화를 그치게 하고 슬쩍 넣어주는 뇌물은 큰 분노를 누그러지게 한다(잠언 21:14)'고 적고 있다. 뇌물은 타인에게 돌아갈 이익을 자신이 부당하게 편취하는 수단이므로 근절돼야 한다.
한편 사회 투명화를 위해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2016년 9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하지만 미처 시행에 들어가기도 전에 개정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경제 활성화에 역행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뇌물로 활성화되는 경제가 과연 정상적이며 오래 가겠는지 되물어 볼 일이다.
중ㆍ고등학교 학생들이 새벽까지 공부하고 직장인들이 뼈 빠지게 일을 해도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서 맴도는 것은 사회가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절실한 것은 경제 활성화보다 경제 민주화다. 뇌물소득에 대한 과세논리를 다시 짜야 한다. 왜냐면 뇌물이 경제를 망치기 때문이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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