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을 거슬러 올라가 대학원 조교를 할 때 얘기다. 어느 날 교수님이 시내에 나가 연구 관련 책을 사오라고 7만원을 주셨다. 당시 만원이 넘는 책이 거의 없었던 걸 생각하면 꽤 큰돈이었다. 밥 먹고 차비로도 쓰라고 하셨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책은 6만5000원어치, 교통비랑 식비로 5000원을 써야지 했다가, 그래도 나도 하루 꼬박 시간을 내서 가는 거니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책은 6만원어치만 사고 나머지 만원을 챙겨도 되겠다 싶었다. 막상 서점에 들르니 관련 주제로 살 책이 꽤 많아 고민이 됐다. 결국 책값으로 7만8000원을 쓰고 무거운 책꾸러미를 낑낑대며 끌고 왔다. 물론 교수님은 8000원을 더 주셨지만 버스에서 내내 5000원이 정당한 나의 일비일까, 아니면 만원일까 고민했던 일은 쓰잘 데 없는 게 돼 버렸다.
이게 대학원 조교로서의 버전이라면 조교를 쓰는 입장이 되니 교수 버전의 다른 고민이 있다. 처음에는 남들처럼 조교 인건비를 다달이 똑같이 책정해 지급했다. 그런데 일이 가장 몰리는 때는 연구 종료 시점이 가까워 최종보고서를 쓸 때인데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첫 달부터 같은 월급을 받던 조교는 바빠지는 달에도 왜 여전히 똑같이 받는지 의아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다달이 약간씩 다르게 지급하기 시작했지만 처음 계획과 달리 작업량이 많거나 적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시간당 액수를 정해 놓고 일한 시간만큼 지급하기로 했다. 작업량과 보상 규모가 엇박자 나는 일은 줄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일한 시간을 정직하게 보고하고 있는지 알 수 없고 (물론 이런 걸 의심한다면 애초 일을 시키지 말아야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똑같은 일을 2시간에 끝낸 조교는 4시간 걸려 마친 조교보다 오히려 보상을 덜 받게 되는 것이었다.
그나마 연구과제 규모나 건수가 적은 사회과학 분야에서 고민이 이럴진대, 연구비가 훨씬 많고 실험실을 중심으로 연구와 학업이 수행되는 이공계 분야 대학원 조교들의 경제적 처우는 어떠할까.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개발과제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현재 학생인건비 풀링제를 통해 참여율 100%를 기준으로 석사과정생 월 180만원, 박사과정생 월 250만원으로 정해져 있다. 참여율 100%는 한 달 작업량을 기준으로 한 사람이 과제 수행을 위해 온전히 투입될 때 발생하는 소요비용을 기준으로 한 것으로 어떤 과제에서 석사과정생에게 월 60만원을 준다면 180만원 대비 약 33%의 참여율을 산정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이공계 대학원생들이 참여율에 따라 정해진 액수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고 있다. 참고로 2012년 말 KAIST대학원 총학생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KAIST 대학원생의 시간당 평균임금이 2353원으로 법정최저임금인 4850원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실제 참여율을 지킨다 해도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 주당 40시간, 즉 월 160시간을 참여율 100%로 계산하면 석사과정생의 '시급'은 1125원, 박사과정생은 1562원이 나온다. 어떻게 국가연구개발사업의 인건비 산정 기준이 법정최저임금을 어기는 모순이 생길 수 있는가.
이는 대학원생이 '그냥' 노동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과제에서 대학원생에게 지급하는 보상은 '임금'이 아니다. 대학원생은 노동자이기 전에 학생이므로 학업이 우선이다. 따라서 참여율 100%를 주당 40시간으로 산정할 수는 없다. 만약 학업 시간을 절반으로 해서 주당 20시간을 참여율 100%로 계산하면 석사과정생은 시간당 2250원, 박사과정생은 3125원이 나온다. 여전히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 이는 연구과제에 속해 수행하는 작업을 '연구'이지 '노동'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연구와 노동의 경계가 오락가락이라는 것이다. 교수들은 학생들이 연구과제 조교 일을 연구의 일부로 보기를 바라는 반면, 학생들은 본인이 직접적으로 관심을 갖고 뛰어드는 연구가 아닌 이상 아무리 비슷한 주제 연구라도 교수를 위한 노동으로 보게 된다. 궁극적으로 대학원생 조교의 정당한 경제적 보상은 대학원생은 노동자인가에 대해 제대로 대답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김소영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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