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역발상 속 'X카 프로젝트' 강행
포니 엑셀, 1987년 美 수입차 소형차 1위
'품질경영' 정몽구, 파격 보증 도입 승부수
2004년 신차 품질 도요타 추월
정의선, 제네시스 프리미엄 전략 제시
제네시스, 연평균 60% 성장 초고속 질주
1986년 2월 현대자동차 소형 세단 '포니 엑셀(Pony Excel)'을 실은 배 한 척이 미국 플로리다주 잭슨빌항에 도착했다. 울산항을 떠나 태평양을 횡단하는 데 한 달 가까이 걸렸다. 배에 실린 차량은 1000대 남짓이었지만, 한국 자동차 산업이 세계 최대 시장에서 첫발을 내딛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이 첫 수출을 시작으로 현대차는 지난 40년간 미국 시장에서 꾸준히 판매 기반을 넓혀왔다. 1986년 이후 미국으로 수출한 차량은 모두 1144만9280대에 달하며, 현지 생산 물량을 더하면 올해 1월까지 누적 판매는 1803만3943대다. 이를 모두 아반떼 기준으로 일렬로 세우면 지구 두 바퀴를 돌고도 남는 거리인 8만4600㎞에 이른다.
미국 진출 40년은 현대자동차그룹이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 도약한 과정 그 자체다. 저가·저품질 이미지로 혹평을 받던 초기 단계를 지나, 품질 경쟁력과 브랜드 신뢰를 축적하며 명실상부한 글로벌 자동차 3위권으로 자리 잡는 발판이 됐다. 전동화와 미래 모빌리티 전략 역시 이 같은 미국 시장 경험 위에서 본격화됐다.
미국 진출 초기 현대차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내세운 수입 소형차를 앞세웠지만 혹독한 품질 논란에 시달렸다. 2000년대 들어 품질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 어렵게 신뢰를 회복했고, 2010년대에는 프리미엄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높였다. 현대차의 미국 진출 40년사는 단순한 수출의 기록이 아니라 위기 때마다 방향을 바꾸고 한 단계씩 위상을 끌어올린 재도약의 연속이었다.
'X카' 정주영의 도전
프로젝트명 'X카'. 부도 직전에 몰린 현대차가 사활을 걸고 추진했던 프로젝트다. 현대차의 미국 진출은 이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됐다. 'X카'로 명명된 포니 엑셀은 처음부터 미국 시장을 겨냥해 개발된 차였다. 미국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전륜구동 방식으로 구조를 바꿨고, 까다로운 미국 안전 규제와 평가를 충족하기 위해 미쓰비시와 기술 제휴도 맺었다.
'X카 프로젝트'의 초기인 1980년은 제2차 오일 쇼크로 환율과 금리가 급등하며 현대차도 휘청이던 시기였다. 양산 프로젝트가 무산될 정도로 경영 여건은 악화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주영 선대회장은 오히려 대규모 증설을 지시하는 역발상 투자에 나섰다. 1985년 2월 현대차는 건설에 착수한 지 3년5개월 만에 연간 30만대 규모의 신규 공장을 지었다. 기존 연 15만대에 더해 총 45만대로 대규모 생산 역량을 갖추게 됐다.
정 선대회장은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중심인 미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면 현대차가 세계 기업으로 도약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공장 증설은 미국 진출을 전제로 한 선제적 투자인 셈이다. 같은 해 12월 포니 엑셀은 미국 환경보호국(EPA)으로부터 테스트 합격 통보를 받으며 수출길이 열렸다.
1985년 포니엑셀 신차발표회에 참석한 고(故) 정주영 선대회장. 현대차 제공
초기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수출 원년 포니 엑셀은 목표했던 10만대를 훌쩍 넘는 16만8882대의 판매 성과를 냈다. 이듬해인 1987년에는 미국 시장에서 연간 수입 소형차 판매 1위를 차지할 정도를 인기를 끌었다. 이때 세운 '26만3610대'의 판매량은 수입 소형차 기준으로 지금까지도 역대 최고 기록으로 꼽힌다.
우수한 상품성과 가격 경쟁력, 현지 유통망을 고려한 딜러 전략이 맞물린 결과였다. 1986년 미국 경제지 '포천'은 '올해의 10대 상품' 중 하나로 포니 엑셀을 선정하며 "역사상 가장 빠른 매출 신장률을 보인 수입품"이라고 평가할 정도였다.
정 선대회장의 포니 엑셀을 단순한 자동차가 아니라 한국 산업의 이미지를 실어나르는 상징으로 여겼다. 그는 "자동차는 달리는 국기다. 자력으로 자동차를 생산·수출할 수 있는 나라라는 이미지는 다른 상품의 기술 수준까지 높게 평가받게 만든다"고 했다.
정몽구의 '10·10 전략'
포니 엑셀의 성공은 오래가지 않았다. 품질과 AS에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값은 싸지만 품질은 떨어지는 차'로 취급받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본 정몽구 명예회장은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1999년 절체절명의 승부수를 던졌다. 미국 시장에 '10년·10만마일'의 엔진 무상 보증을 전격 도입한 것이다. 당시 경쟁 업체들의 평균 보증 기간이 2년·2만4000마일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파격을 넘어선 모험이었다.
품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천문학적인 리콜 비용을 감당해야 할 수도 있었다. 정 명예회장은 '품질 경영'을 전면에 내세우며, 설계·생산·협력사 관리까지 전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품질이 담보되지 않으면 신차 출시 일정을 미루고, 사옥 1층에 품질상황실을 만들어 수시로 회의를 주재하며 임직원들을 혹독하게 밀어붙였다.
변화는 숫자로 나타났다. 정 명예회장이 품질경영을 전면에 내세운 지 5년 만인 2004년, 현대차는 미국 시장조사기관 JD파워가 실시하는 신차품질조사(IQS)에서 도요타를 제쳤다. 당시 미국 언론은 이를 두고 "사람이 개를 물었다"며 놀라움을 표현했을 정도다. 매년 JD파워의 지적 사항을 빠짐없이 반영하며 품질 개선을 거듭한 결과였다.
품질 경영이 꽃을 피우면서 미국 판매량도 급증했다. 1999년 8만대 수준까지 떨어졌던 판매량은 불과 5년 만에 85만대로 10배 이상 늘었다. 이때 축적된 품질 개선 경험은 현대차그룹이 2009년 글로벌 완성차 5위권에 진입한 핵심 동력이 됐다.
'가장 빠른 성장' 제네시스의 반전
현대차의 미국 스토리에 새 전환점을 만든 것은 고급 브랜드 제네시스다. 제네시스는 미국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자리 잡으며 현대차 브랜드 이미지 전체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
제네시스는 2016년 미국에 진출한 후 10년 사이 판매량이 약 12배 늘었다. 2016년 6948대에 불과했지만 지난해는 8만2331대에 달했다. 2022년 닛산 인피니티를 제치면서 현재 미국 고급차 시장에서 점유율 6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고급차 시장은 메르세데스-벤츠, BMW, 렉서스가 3강 구도를 형성하고, 그 아래 아큐라·링컨·닛산 등이 포진해있었다. 제네시스는 10년간 연평균 60% 성장률로 이 틈새를 파고들었다. 올해는 링컨을 제치고 5위권에 진입이 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 2015년 11월 제네시스 브랜드 선포식에서 제네시스 브랜드 출범을 발표하는 모습. 현대차그룹 제공
제네시스는 출시부터 지금까지 정의선 회장이 직접 챙긴 프로젝트다. 정 회장은 현대차 기술력이 독자적인 고급 브랜드를 구축할 수준에 이르렀다고 판단, 프리미엄 브랜드 출범이 현대차 전반의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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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제네시스는 GV70를 제외한 대부분의 모델을 국내 공장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제네시스의 미국 판매는 8만2331대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으며, 현대차 전체 판매(제네시스 포함) 비중은 9.1%에 달했다. 평균 단가가 높은 고급차 특성상, 수출 금액 기준 기여도는 더욱 크다.
우수연 기자 yesi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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