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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우스꽝스러운 고급승용차 세제

시계아이콘읽는 시간1분 28초

[충무로에서]우스꽝스러운 고급승용차 세제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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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가들이 고급 승용차에 열광하고 집착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신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기 위함일 것이다. 이는 여성들이 명품 옷이나 가방을 들고 다니면서 상대적 우월감을 만끽하고픈 심리와 유사하다. 고급 승용차를 통해 본인의 부와 권력을 이성에게 뽐내고 싶은 '수컷 본능'도 있다.


고급 승용차일수록 옆의 차가 조심해서 운전하고,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늦게 출발해도 경적도 덜 울린다거나 호텔 등에서 우대도 받는 등 '사회적 복종'을 누리는 쾌감도 있다. 이들은 아마도 '신분에 합당한 예우를 하라'는 프랑스 격언처럼, 사회가 고급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자를 더 많은 존중을 해 주길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하기야 이와 같은 현상은 2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다. 옛날 황제나 군주가 애지중지한 명마(名馬)가 현재 고급 자동차와 같은 역할을 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고급 승용차를 이용한다고 해서 달리 비난할 근거는 없다. 수억원대의 포르쉐나 페라리 자동차를 몰고 다녀도 내 돈으로 구입해 타고 다닌다는 데 시비할 것은 못 된다. 이들에게 소형차가 대기를 덜 오염시킨다고 한들 콧방귀나 뀌겠는가. 오히려 자기들이 '큰 소비'를 함으로써 소비 진작을 통한 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평의 관점에서 보면 그렇게 한가롭지는 않다. 이들 고급 승용차의 대부분은 기업 소유다. 2014년 통계를 보면 차 값 2억원 이상의 수입차 중 87.4%가 기업이 업무용으로 사용하겠다며 구입한 차량이라고 한다. 기업 소유 차량이라면 이들의 취득, 보험, 운전자 고용, 수리 비용, 감가상각비 등을 모두 기업의 비용으로 처리해 법인세나 소득세를 줄였을 것이다. 현행 세제는 고급 승용차라고 해서 달리 비용을 인정하지 않는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이러니 세금을 안 내거나 덜 내려면 고급 승용차를 사야 한다며 외제차 판매회사들이 판촉활동을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결과적으로 기업인이 고급 승용차를 몰고 다니며 즐기는 비용을 국민들이 부담하는 것과 같다. 기업이 고급 승용차 관련 비용을 지출하지 않았다면 그만큼 세금으로 국가에 들어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우스꽝스러운 세제다.


물론 업무용으로 사용했다면 세법상 비용으로 공제된다(수익비용 대응원칙). 그러나 업무용인지 개인 목적으로 사용했는지를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기업인이 서울 집에서 회사에 출근한 뒤 회의참석차 세종시에 갔다가 천안 부근 골프장에서 친구들과 운동을 한 뒤 귀가를 했다면, 어디서 어디까지가 개인 목적인가. 설사 구분이 가능하다고 해도 그 금액을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더군다나 업무용이라고 해도 고급 승용차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지는 의문이며 업무용으로 사용했다고 해도 반드시 비용으로 공제해 줄 필요는 없다. 공평과세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접대비가 그 대표적인 예다. 기업은 접대비를 많이 사용할수록 비용은 많아져서 세금 부담이 적다. 접대비를 아껴 쓴 회사가 오히려 세금을 많이 부담하게 될 수 있다. 이런 불균형을 시정하기 위해 비용 한도를 두고 있다.


금번 정부의 세법개정안에 따르면 회사 로고가 붙은 차량은 현재와 같이 전액 비용 공제를 해 주고 그렇지 않은 차량 중 임직원 전용 자동차보험에 가입한 차량은 유지비의 50%를 비용으로 공제하고 나머지는 업무용으로 사용했음을 입증하면 추가적으로 비용으로 인정한다고 한다.


이래 가지고 근로자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을 치유하기 어렵다. 선진국 세제와 비교해도 너무 약한 수준이다. 그들은 차량 가격이나 운행 거리 등을 기준으로 해 비용 한도를 두고 있다.


보다 확실하게 고쳐야 한다. 근로자 수준으로 맞추면 된다. 그래야 공평하기 때문이다. 즉 근로자들이 소유하고 있는 차량의 배기량과 운행 거리만큼만 회사가 보유한 차량(고급 승용차 포함)에 대한 비용을 인정해 주면 된다. 프랑스가 이렇게 하고 있다. 수컷 본능 발산 비용까지 세금에서 지원해 줄 필요는 없다고 본다. 아니 지금 그럴 여유가 국고에 없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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