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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저녁이 있는 삶, 불가능한 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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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로에서]저녁이 있는 삶, 불가능한 꿈일까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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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녀 양육은 무성(無性)양육이나 다름없다"고 어느 진화학자가 일갈했다. 생물학에서는 생물체의 번식방법을 암수의 구별 없이 이뤄지는 무성생식과 암수의 생식세포가 결합돼 이뤄지는 유성생식으로 나눈다. 그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 가정의 자녀 교육은 '아빠 없이 엄마만으로 이뤄지는 무성양육'이라는 이야기다.


가정에서 아빠가 존재감을 잃은지 오래다.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가진 귀한 자원을 직장에 바치기 때문이다. 시간, 노력, 열정, 충성심 그리고 자신의 청춘까지 직장에 바친다. 우리나라 근로자의 근로시간은 연간 2079시간으로, 대부분 1800시간에 못 미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른 국가에 비해 확연하게 길다. 2015년 통계청 생활시간조사에 따르면 주5일 근무제 시행으로 근무시간이 줄어도 여가시간이나 소비시간이 늘지 않고 오히려 수면시간이 늘었다고 발표했다. 피곤한 직장인들의 삶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두 번째 이유는 근무 외 시간에도 조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회식이나 거래처와의 저녁자리는 근무시간보다 노동 강도가 더 높지만 아예 근무시간에 들어가지 않는다. 상사 및 동료, 부하직원과의 회식은 휴식이라기보다는 업무의 연장이다. 술은 또 얼마나 많이 마시는가. 우리나라 1인당 술 소비량은 세계 최고수준이며 질병발생률, 수명단축 등의 부작용에서도 고위험국가에 분류돼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에서 아빠가 자의 반, 타의 반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것도 큰 이유다. 요즘 TV에 나오는 광고를 보면 '엄마'만 찾는 딸이 등장한다. 못내 섭섭해서 딸과 어떻게든 대화를 해 보려는 아빠의 모습이 안쓰럽다. 우리 이웃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자녀가 성장할 때 함께 시간을 보내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 의사소통하는 것이 어색하다. 직장 일이 바빠서 그랬건, 엄마 위주로 이뤄지는 자녀 교육이 편해서 그랬건 아빠의 설 자리가 없어진 것은 분명하다.

'저녁이 있는 삶'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삶의 질이 올라가고 국민의 행복감이 올라간다. OECD '2015 삶의 질(How's life?)'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민들의 만족도는 10점 만점에 5.8점으로 최하위권이었다. 어려울 때 의지할 친구나 친척이 있느냐는 '사회연계지원' 점수는 꼴찌였다. 가족 간 단절, 가정의 기능 상실, 사회로부터의 소외감 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 아빠가 자녀와 같이 놀아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하루 3분, 돌봐주는 시간도 3분으로 회원국 중 가장 짧았다.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 역시 하루 평균 48분으로 가장 짧았다. OECD 평균은 하루 151분이고, 이 중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은 47분이다. 이웃나라 일본 어린이들만 해도 아빠와 함께 놀거나 공부하는 시간이 하루 12분으로 한국의 2배다.


저녁이 있는 삶이 가능하려면 사회 전반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생산성을 높이되 근로시간을 줄여야 한다. 노사정 합의에 따라 내년부터 근로시간이 1800시간대로 줄어들 것이라 한다. 근로시간을 줄인 만큼 생산성이 높아져서 진정한 근로시간 단축이 이뤄지기를 바란다. 회식문화도 바뀌어야 한다. 미국의 질병대책센터가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술로 인한 경제적 손실 규모가 2010년을 기준으로 연간 2490억달러(약 280조원)에 이르며, 그중 71%인 1790억달러는 직장에서의 생산성 저하로 인한 것이다. 우리나라도 술로 인한 직장의 생산성 저하를 측정하면 만만치 않은 액수가 나올 것이다. 게다가 가족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더 부정적이다.


저녁이 있는 삶은 가족 또는 가정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공동체의 가치에 관한 이야기다. 기업의 생산성 향상과 근로시간 단축, 기업문화 개선 및 사회 구성원의 인식 변화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아니 너무 쉽게 버렸던 '가족 공동체의 가치'를 회복하려는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개인이, 가족이 그리고 사회가 함께 노력해야 이룰 수 있는 꿈이며 모두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다.


이은형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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