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종길 기자]이승엽(삼성)은 더 이상 괴물이 아니다. 45경기에 남긴 타율은 0.249. 장타율과 OPS도 각각 0.398과 0.694다. 시즌 중반이나 연도별 기록으로 모두 커리어 로우. 장기인 홈런도 좀처럼 때리지 못한다. 대형아치를 그린 건 네 차례. 56홈런을 때린 2003년의 위력은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사실 내리막은 당연한 결과다. 이승엽은 어느덧 불혹을 앞뒀다. 만 37세다. 반사신경이 전성기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승엽은 지난 시즌 21홈런을 쳐 8년 연속 20홈런을 기록했다. 현 흐름에서 수치가 9년으로 늘긴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모두의 이목이 쏠린 기록만큼은 충분히 가능하단 평이다. 통산 최다 홈런이다.
이승엽은 2일 대구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홈경기에서 시즌 4호 홈런을 쳤다. 3회 김수완의 실투로 연결된 포크볼을 잡아당겨 오른 담장을 넘겼다. 지난달 11일 문학 SK전 이후 22일, 17경기 만에 그린 대형아치. 그 사이 통산 최다 홈런은 2개 앞으로 다가왔다.
현 기록의 주인은 양준혁이다. 통산 351홈런을 쳤다. 시즌 전만 해도 다수 관계자들은 이승엽이 5월 중순에서 6월 초쯤 고지를 정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해까지 345개로 기록에 6개만을 남겨놓았던 까닭이다. 출발은 순조로웠다. 4월 10일 대니 바티스타(한화)를 상대로 시즌 1호 홈런을 쳤다. 시즌 개막이 빨랐던 점을 감안해도 빠른 신고였다. 지난 시즌 오재영(넥센)으로부터 1호 홈런을 빼앗은 건 4월 15일이었다.
뒤늦게 홈런을 때린 이승엽은 이내 특유 몰아치기를 뽐냈다. 고원준(롯데)으로부터 4호 홈런을 때린 건 4월 26일이었다. 올 시즌보다 한 달 이상 빨랐다. 홈런은 4월 5개가 나오더니 5월과 6월 각각 4개와 6개가 터졌다. 올 시즌은 4월 2개, 5월 1개, 6월 1개다.
문제는 나이에 따른 체력 저하다. 이승엽의 홈런 페이스는 지난 시즌 중반 크게 꺾었다. 7월 2개에 그쳤고 8월(3개)과 9월(1개) 총 4개에 머물렀다. 한창 때만 해도 이승엽은 여름에 강한 면모를 보였다. 특히 6월이 그랬다. 일본 진출 전까지 치른 9시즌 가운데 6월 홈런왕을 다섯 차례나 차지했다. 그러나 지난 시즌 불거진 체력 문제로 이전 위력을 발휘할 지엔 물음표가 붙었다. 더구나 이승엽은 방문경기에서 한 개의 홈런도 때리지 못하고 있다. 홈 11개, 방문 10개로 고른 모습을 보인 지난 시즌과 판이한 흐름이다.
문제는 타율에서도 발견된다. 지난해 4월은 무려 0.406였다. 5월과 6월 기록도 각각 0.320과 0.293으로 높았다. 올 시즌은 다르다. 3월 0.125에 머물렀고 4월에도 0.225에 그쳤다. 5월 끌어올린 0.282도 지난 시즌에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풀카운트 승부에서 약했다. 21차례 상황에서 한 개의 안타도 치지 못했다.
해결사 면모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이승엽의 득점권 타율은 0.309다. 홈런도 3개나 쳤다. 긴 부진에도 리그에서 여섯 번째로 많은 33타점을 쓸어 담았다. 집중력과 노련함만큼은 여전히 상당한 경쟁력을 보이는 셈이다. 이 점을 감안할 때 이승엽의 홈런 페이스는 정형식, 박한이, 배영섭, 김상수 등 삼성 테이블세터의 활약에 충분히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현 부진의 원인으로 강박관념을 꼽는다. “마음에 짐을 덜어야 좀 더 편하게 야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며 “승엽이가 빨리 기록을 깼으면 좋겠다”라고 했다. 물론 이승엽은 “기록을 의식하진 않는다”라고 말한다.
마해영 XTM 야구해설위원은 타격 자세가 조금 무너졌다고 지적한다. “백스윙에서 쉬지 않고 바로 배트를 휘두른다”며 “쉬어가는 타이밍이 필요하다. 스트라이드 뒤의 동작부터 일정하게 구분을 짓고 타격을 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한 번 자세만 잡힌다면 금세 무서운 타격감을 선보일 것”이라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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