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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한 인생 2막 50+]하나에 통(通 )하면 만사에 通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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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전반전은 축구전문 만화가, 후반전은 요식업 사장 오일룡씨

[당당한 인생 2막 50+]하나에 통(通 )하면 만사에 通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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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축구전문 만화가로 명성을 높였던 오일룡 씨는, 상상 속 공간인 만화에서 나와 현실의 맛에 취했다. 식당 경영자로 성공하고 있다. 그가 전하는 인생 후반전 승리 노하우를 들어본다.

“만화를 그리는 것이나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나 똑같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축구전문 만화가로 명성을 떨치며 30년 동안 2000권 이상의 만화책을 펴낸 오일룡(63) 씨다.


그의 만화는 남성적이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춤추는 센타포드’의 내용은 이렇다. 고교생인 중인공 ‘유비’는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축구부에 들어간다. 그러나 그는 천재성을 발휘해 자신의 축구부를 신흥 강팀으로 부상시킨다. 그 활약으로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되고, 전략이 급상승한 일본 등 세계 강호들과 시합을 이어나간다.

그 후 세계청소년대회가 개최되고 남북한 단일팀을 이룬 우리 청소년팀은 결승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한다. 비록 준우승에 그치지만 이 대회를 발판으로 주인공은 당시 꿈의 팀인 유럽의 ‘AC밀란’으로 스카우트 되고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이어간다.


지금이야 유럽의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우리나라 선수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이 만화가 연재되기 시작한 90년 초반에는 유럽 무대가 우리에겐 생소했다. 당시 한국축구 최고의 스트라이커였던 김주성 선수가 독일 2부 리그에서 뛴 것이 유일한 정도였을 뿐이다.


그러나 이 만화책은 90년대 초중반 세계 축구계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한다. 압박축구의 유행, 세계3대 리그 중 하나인 이탈리아 프로축구리그 세리에A의 황금기, 막대한 자금을 쏟아 부은 J리그의 출범과 일본 축구의 성장, 청소년 남북단일팀 등 그가 왜 축구전문 만화가로 명성을 얻었는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축구에 대한 통찰력이 담겨 있다.


그저 재미로만 보는 만화가 아니라 축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감동까지 갖춘 것이다. 위성방송도 인터넷도 없었으며, 해외축구에 대한 정보도 찾기 힘들었던 시절 그는 독자들에게 해외축구에 대해 눈뜨게 해준 거의 유일한 만화가였다. 이처럼 재미는 물론이며 작품성까지 갖췄기에 그의 만화책들은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때문에 ‘오일룡프로덕션’이라는 팀까지 만들었다. 한 때 팀의 규모는 약 100명까지 불었고 한 달에 한 씨리즈 이상의 만화책이 나올 정도로 분업화가 잘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2000년 중반 이후 더 이상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


“문화의 흐름에 따라가지 못한 거죠. 예전에는 독자들을 흡입할 구성력 있는 스토리가 가장 중요했어요. 그러나 지금은 스토리의 구성도 중요하지만, 감각적인 센스의 에피소드, 위트, 공감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문화의 흐름이 바뀐 거죠.” 이미 60대가 훌쩍 넘은 그는 만화의 주독자인 젊은 세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다고 판단했다.


상상 속에서 살다 현실로 돌아오다
평생 책상에 앉아 만화만 그리면서 살았다. 그런데 만화를 그리지 않으니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세상에 나와 본 경험이 없었다고 회고했다.
“만화는 상상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전문지식을 많이 담아 놓은 축구 만화라고 해도 결국은 상상이죠. 그런데 상상 밖으로 나가려고 하니 두려웠어요. 현실에서 상상은 아무런 필요가 없거든요.”


그는 세상에 적응하는 방법을 테스트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50대 후반인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찾았다. 그랬더니 운전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 유일한 장점이라면 생각한 것을 바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바로 대형면허를 땄습니다. 그리고 트럭 운전에 대해 알아봤죠. 그러나 그것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더군요.”


1톤 등 소형트럭은 작은 짐을 운반하는 경우가 많아 나이가 많은 사람을 꺼리는 경우가 많았다. 힘이 달려서 짐을 올렸다 내리기가 쉽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결국 대형트럭으로 장거리 운행을 해야 하는데 새벽까지 운행을 뛰어야 하는 등 일 자체가 너무 고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학원버스를 운행할 기회가 생겼다. 그 즉시 25인승 버스를 구매했고 6개월이 넘게 일했다. 그러면서 상상에서 현실로 돌아오는 방법을 익혔다. 단지 운전만 하지 않았습니다. 아침부터 새벽까지, 유치원부터 재수생들까지, 이 학원 저 학원 돌아다니면서 최대한 많이 경험하려고 했다. 그리고 계약서를 보는 방법도 익혔고, 선생님들이 상담하는 것도 듣기도 했다. 최대한 빨리 현실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만화를 그릴 때보다 더 정신없이 보냈습니다. 그렇게 6개월쯤 사회에 부딪히니 조금 힘이 생기더군요. 현실을 보는 근육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요? 때문에 다른 일에 도전해볼 수 있겠다는 용기도 생겼습니다.”


6개월간 학원버스 기사로 일을 한 다음, 어떤 것을 해야 가족들을 고생시킬지 않을지 고민했다. 그러다 골프가 지금보다 더 대중화 될 것이라는 문화의 흐름을 읽었다. 골프와 관련된 사업이 자리만 잡히면 생활비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고, 그 당시 처음 등장한 스크린골프 매장을 열었다.


성인뿐만 아니라 가족단위까지 골프를 즐기는 사람이 줄을 설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적중했다. 매장을 낸 초기에는 경쟁자도 별로 없었고, 골프를 즐기는 인구는 계속 증가했다. 그러나 현실에 적응하기가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안정적으로 정착할 줄 알았던 스크린골프 매장이 단 한 번의 판단 미스로 흔들렸기 때문이다. 당시 스크린골프 장비를 만드는 회사는 몇 개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단 하나의 회사가 거의 독점하고 있는 모양새다. 다시 말해 스크린골프 장비를 만드는 회사 단 한 곳만 성공한 것이고, 그 회사의 장비를 선택하지 않은 매장은 스크린골프를 만드는 제조업과 함께 점차 매출이 줄었다.


“제가 2007년에 스크린골프 매장을 냈어요. 정말 초기에 들어간 것이었죠.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비슷한 매장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경쟁자가 그만큼 늘어났죠. 결국 시설투자를 또 해야 했죠. 하지만 임대매장에 투자하기에는 위험성이 너무 컸죠. 게다가 얼마나 더 경쟁자가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었고요. 그래서 원점에서 다시 자신을 돌아보며 노후의 진로를 생각하게 되었어요.”


[당당한 인생 2막 50+]하나에 통(通 )하면 만사에 通한다


만화나 레스토랑이나 원리는 같다. ‘감동’을 주는 것이다
레스토랑을 처음 시작한 것은 1998년 경이었다. 아담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그 뒤에 탁 트인 임진강이 보이는 형세가 마음에 들어 밭을 구입했다. 그리고 그 위에 레스토랑으로 사용할 건물을 올렸다.
“처음에는 제가 운영할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아직 만화를 그리고 있기도 했고요. 그냥 아내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던 마음이었죠. 때문에 예쁜 레스토랑으로 시작했습니다.”


깔끔한 맛과 조용한 분위기 그리고 숲길을 산책하며 멀리 임진강을 볼 수 있는 여유로움으로 인해 점차 입소문을 탔다. 일단 한 번 찾아온 사람은 꼭 다시 찾을 정도였다. “최고의 지배인과 최고의 주방장을 썼어요. 때문에 서비스와 음식의 맛을 보고 감동한 사람들은 꼭 다시 찾아왔죠. 레스토랑이 자리를 잡아가고 결국 본궤도에 오르자 저는 다시 만화를 그리는 작품생활에 몰두했죠. 그런데 시간이 흐르자 주변에 레스토랑이 확장되기 시작했고 경쟁이 치열해졌죠. 때문에 아내가 운영하던 레스토랑도 근근히 명맥을 유지하는 수준이 되었습니다.”


그가 본격적으로 요식업에 뛰어든 것은 스크린골프 매장을 접은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스크린골프 장비에 투자하려 했던 자금을 레스토랑에 재투자하면서부터다. 아내에게 일임했던 레스토랑 운영 방법도 자신의 뜻대로 수정했고, 스테이크와 랍스타 등을 재료로 하는 양식에서 낙지를 재료로 하는 한식으로 메뉴도 바꿨다. 다만 고객을 감동시켜야 한다는 원칙만은 바꾸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요. 미래를 위해 혹은 저와 가족의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죠. 때문에 축구만화만 1700권 정도, 축구만화가 아닌 것까지 합치면 2000권 이상의 만화책을 냈죠. 한창 때는 한 달마다 한 씨리즈의 만화책을 출간 했어요.
그러나 인생에도 열정의 여름이 가면, 어김없이 가을이 오나봅니다. 나이가 드니 운명에 도전하기보다 순응 하게 되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긍정의 마인드로 바뀌어 가더군요. 그리고 내면의 가치를 더 자세하고 깊숙하게 들여다보게 되더군요. 자연히 마음의 여유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업종을 낙지 전문점으로 바꾸고, 정성을 다해 고객을 모시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의 식당을 찾은 사람들은 세 가지 감동을 느낀다. 첫 번째는 깔끔하고 깊은 맛을 내는 음식에 감동하며, 두 번째는 그의 친절함에 감동한다. 직접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는 등 직원들보다 솔선수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 번째는 그를 알아본 사람들에게 직접 만화를 그려주고 사인을 해주는 서비스에 감동하는 것이다. 그가 그린 만화의 남성적인 주인공과는 달리 서글서글한 눈매에 겸손함과 성실함이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기 때문이다.


“벌써 요식업으로 뛰어든 지 3년이 넘었네요.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고 시행착오를 통해 배운 것도 많습니다. 그러면서 한 가지 확신이 생겼습니다. 만화나 식당이나 원칙은 같다는 것입니다.” 만화를 통해 독자에게 감동을 주려면 세 가지가 완벽해야 한다. 스토리와 그림, 그리고 팀워크다. 그런데 요식업에서도 성공을 하려면 바로 세 가지가 완벽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첫 번째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음식이 맛있어야 한다. 두 번째로 만화의 그림체와 같이 인테리어도 메뉴와 어울리고 편안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팀워크다. 주방에서 만드는 음식은 맛있는데 매장 직원이 친절하지 않다면, 친절하지만 음식이 맛있지 않다면 결국 손님은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상상에서 살던 제가 현실로 눈을 돌렸을 때 정말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실제로 부딪혔던 어려움보다 더 두려움을 크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아왔다면 새로운 것에 부딪힐 때 시행착오도 많이 줄어든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경우에 지금까지 쌓아온 경험들을 활용할 수 있더군요. 다만 상황에 따라 조금씩 그 지식을 변화시켜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그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부드러움’이었다. 남성적인 축구만화를 그린 만화가라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내면의 행복을 찾기 시작하니 젊은 시절보다 편안해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인생 후반전은 또 다른 드라마가 될 것 같았다.


50+ 성공노트
자본금 구입 및 건축 비용까지 총 8억원 가량
준비기간 및 과정 아내가 먼저 운영 시작 후 합류했기 때문에 특별한 준비과정 없음. 다만 창업 후 더 특별한 교육을 받기 위해 맛집 명인을 찾아다니는 등의 노력.
성공노하우 무엇을 해서 성공하겠다는 생각보다 그것을 할 수밖에 없으니 잘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만화도 요식업도 그리고 그 어떤 것이든 그 원칙은 같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선택했으면 그것을 잘 하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다.


이코노믹 리뷰 김승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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