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분·조정’ 실권 없으면 명패만 바뀐 자리
출렁이는 R&D 증가율…재정준칙 필요성 대두
R&D 예비비 신설·전담 상임위 논의도
과학기술부총리제가 실효성을 갖추려면 결국 예산 권한이 핵심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부총리로 승격됐다 하더라도 실질적 권한이 따르지 않으면 힘이 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다. 특히 내년도 35조3000억원 규모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놓고 과기부총리가 '조정' 역할을 하더라도 최종 '편성' 권한은 여전히 기획재정부에 남아 있다. 전문가들은 "편성권 이양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도 "적어도 배분·조정권조차 확실히 보장되지 않으면 부총리제는 힘을 잃는다"고 지적한다.
핵심은 배분·조정의 실권화다. 관행상 5월 말 각 부처가 예산요구서를 내고, 혁신본부와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6월30일까지 R&D 배분안을 정리해 기재부로 넘기면, 기재부가 8월 말 정부안을 확정해 국회로 보낸다. 문제는 이 구조에서 심의 기간이 지나치게 짧고, 기재부가 부처별 '실링(상한)'을 먼저 정해두는 탓에 조정력이 재정당국으로 쏠린다는 점이다.
국정기획위가 혁신본부의 심의기한을 8월 중순까지 늘리고, 대상도 '주요 R&D'에서 '전체 R&D'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관련 법 개정이 확정되지 않으면 내년도 설계는 올해와 크게 달라지기 어렵다. 결국 과기정통부의 총액 기준 배분·조정권을 법률로 명문화하고, 부처별 상한 선배정 관행을 끊는 것이 1순위 과제다. 과기정통부가 먼저 R&D 총액을 부처별로 배분하고, 기재부는 이를 존중해 예산안을 편성하는 구조로 바뀌어야 한다는 제안이다. 법으로 권한을 보장하되, 실제 운영에서도 과기부총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태석 전 과기정통부 차관은 "정책 조정력은 예산을 '빼고 넣는' 힘에서 나온다"면서 "예산을 움직일 수 없다면 컨트롤타워로서 의미가 없다"고 지적했다.
입법 보완은 이미 가동 중이다. 국정기획위 경제 2분과를 맡았던 황정아 의원이 발의한 과학기술기본법 개정안에는 "정부 총지출의 최소 5%를 R&D에 쓴다"는 내용이 들어가 있다. 다만 비율을 법에 못 박는 '경직 규정'은 상황 변화에 따른 정책 조정을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숫자보다 중요한 건 사회적 공감대와 예측 가능성 그리고 이를 받쳐줄 거버넌스라는 것이다.
부총리 재량으로 직접 집행하는 'R&D 예비비'를 별도 항목으로 두자는 제안도 이뤄지고 있다. 연구현장의 불확실성이 큰 만큼 '이머징 기술'이나 긴급 현안에 즉시 투입할 주머니를 부총리가 직접 쥐어야 한다는 논리다.
예산의 안정성도 핵심 과제로 떠오른다. 박찬수 과학기술정책연구원 부원장은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보면 R&D 증가율이 연 2.6% → 10.6%까지 올랐다가 2024~2026년에는 5.5% 수준으로 다시 내려가는 등 등락이 크다"며 "R&D는 국가 미래투자인 만큼 총지출과 연동한 재정준칙에 따라 안정적으로 편성해야 한다. 그래야 부총리의 배분·조정도 효과가 생긴다"고 말했다.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과학기술 안건은 늘 방송·통신 현안에 밀려 논의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왔다는 게 과학기술계 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예산 심의도 마찬가지다. 이런 구조로는 운용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이에 과학기술 분야만을 전담하는 별도의 상임위를 두고, 주요 R&D 안건을 우선 심의하도록 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그래야 예산 심의가 정치적 이슈에 휘둘리지 않고,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안정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난달 23일 '과학기술부총리 신설, 기술선도 성장을 위한 역할과 과제' 포럼에서 유상임 전 과기정통부 장관은 "처음 1조8000억원 규모로 편성된 AI 예산에 그래픽처리장치(GPU) 한 장도 반영되지 않았던 것은 충격적이었다"며 "결국 추경으로 1조원 이상을 추가 확보해 GPU 예산을 넣었지만, 이런 사태는 부처 간 칸막이와 컨트롤타워 부재 탓"이라고 말했다. 데이터센터는 국토부, 전력은 산업부, 인력 양성은 교육부, GPU는 과기정통부가 나눠 맡는다. 이를 한자리에 모아 신속하게 결정하는 시스템이 없으면, 1조8000억원짜리 예산에 GPU가 빠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반복된다는 의미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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