립부 탄 새수장 맞은 지 두 달
TSMC 합작설·분사설 선 긋고
파운드리 성공 강하게 피력
18A 칩 생산 실현 공격 영업
첨단 패키징 기술로 차별화
MS와 대규모 파운드리 계약도
하반기 팬서레이크 CPU 양산 본격화
"한번 쓰러진 빅테크는 다시 일어서지 못한다."
17일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빅테크 기업들 사이에는 이런 저주에 가까운 '불변의 법칙'이 있다. 다른 분야보다도 빅테크 기업들은 공들인 탑이 무너지면 다시 쌓기 매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한 문구다. 빅테크는 기술로 승부해야 하는 시장이다. 기술의 발전 속도는 어느 것보다 빠르다. 기술을 선도하거나 흐름을 따라가야 생존할 수 있는 경쟁의 세계. 그러지 못하고 한번 미끄러지면 그 기업은 반드시 도태돼 사라진다.
인텔은 다를까. 업계는 인텔이 이 불변의 법칙을 사상 처음으로 깨고 다시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만약 인텔이 재기한다면, 그 원동력은 '리더십의 교체'가 될 것으로 본다. 인텔은 오는 18일 립부 탄 최고경영자(CEO)가 취임한 지 딱 두 달을 맞는다. 지난 두 달이 사내 분위기를 인지하고 문제점을 확인하는 '탐색기'였다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개혁의 방향을 설정해야 하는 때에 이르렀다.
인텔은 자국 기업들의 부흥을 위해서라면 어떤 조치라도 취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으로 전환기를 맞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지난 2월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요구에 따라 세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1위 TSMC(대만)가 인텔 공장의 지배지분을 인수하는 등의 방식을 통한 합작 가능성이 제기됐다. 하지만 인텔은 이런 시선들을 거부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파운드리를 다시 일으키겠단 의지를 피력했다. 파운드리 분사설에도 선을 그었다. 탄 CEO는 지난달 미국 새너제이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인텔 파운드리 다이렉트 2025' 행사에서 "주변에서 우리가 파운드리 사업을 계속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나의 대답은 '예스(Yes)'였다"고 했다. 이어 "인텔 파운드리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단 이야기를 하고자 이 자리에 섰다"며 참석한 관계사들에 "잔인할 정도로 솔직한 피드백을 달라"고 외쳤다.
1.8나노 공정으로 차분한 '승부수'
인텔은 떠나간 고객들을 다시 유치하기 위해 최근 공격적인 영업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우선 1.8나노미터(㎚, 1㎚=1억분의 1m)급 공정 기술인 '18A'를 간판으로 내걸었다. 너무 앞서가지도, 뒤처지지도 않는 결단으로 평가된다. 18A 공정은 인텔이 2022년부터 개발해서 내놓겠다고 발표한 기술이었다. 하지만 여러 시행착오로 인해 지지부진해졌다. 취임 후 활로를 모색하던 탄 CEO는 우선 하고 있는 숙제들부터 제대로 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해 18A를 통한 칩 생산을 실현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음 단계로 향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18A는 2나노급 공정보다 더 정밀한 칩 생산이 가능하다. 업계에선 그 차이가 아주 미세해서 사실상 2나노 공정과 똑같이 취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인텔은 1.8나노 공정의 숙련도를 더욱 높이고 첨단 패키징 기술까지 더해서 차별화를 두겠단 방침인 것으로 전해진다. 인텔의 18A 공정을 활용하려는 파운드리 고객사들이 벌써부터 등장하고 있다는 후문도 나온다. 최근 인텔은 마이크로소프트(MS)와 대규모 파운드리 계약을 체결했다는 소식이 현지에서 나왔다. 이어 엔비디아, 구글, 브로드컴과의 계약도 곧 성사될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인텔은 올해 하반기에 18A 공정을 통해 만든 '팬서레이크' 중앙처리장치(CPU)를 출시해 양산을 우선 본격화하려 한다. 이어 내년에 전력 사용의 효율성을 높인 '18A-P' 공정을 내놓고 그 뒤에 2027년 1.4나노급인 14A 공정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 1.4나노 공정은 업계에서 최첨단 칩 생산 공정으로 불리며 인텔이 이 공정을 통한 칩 생산에 성공하면, 한동안 TSMC의 독주로 조용했던 파운드리 시장 경쟁은 다시 뜨거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TSMC는 1.4나노 공정을 2028년부터 해내겠다고 밝혔고 삼성전자도 2027년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엔지니어 중심 인적쇄신 "새로운 인텔"
탄 CEO는 취임 후 기술력 복원과 동시에 인적쇄신에도 힘을 쏟고 있다. 능력 없이 탁상공론에만 머물렀던 경영진과 실무진들을 대거 교체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곤 요직은 엔지니어들에게 맡겼다. 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인텔'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구상이다. 지난 3월3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인텔 비전' 행사에서 탄 CEO는 "인텔은 이제 엔지니어링 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그동안 인텔은 유능한 엔지니어들을 많이 잃었다"면서 "뛰어난 엔지니어를 채용하고 현재의 인재들을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라고도 강조했다.
지난달에는 임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을 통해 인원 감축과 근무 형태의 변화 등 구조조정을 단행하겠단 뜻도 밝혔다. 주 3일 출근을 권장하고 있는 현행 하이브리드 정책도 오는 9월부턴 주 4일 출근으로 바꾸고 불필요한 회의도 없애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내놨다. 탄 CEO는 "현행 사내 구조는 불필요한 관료주의를 낳는다"며 "조직 복잡성을 제거하고 우리의 뿌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김형민 기자 khm193@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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