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 초과 유동성 줄고 수요 불확실성 커져
이는 최근 기조적 변화…탄력적 대응 필요성↑
만기 긴 통안증권 주요 대응+RP매매로 상황별 대응
정례 RP매입, 예측 가능성↑…수급 불균형·낙인효과 해소
한국은행이 연내 도입을 목표로 환매조건부증권(RP) 매입 정례화를 추진한다. 최근 공개시장운영을 통해 흡수해야 할 시장의 초과 유동성이 줄어든 상황에서 수요 변화의 불확실성은 오히려 커지면서 RP 매각과 함께 매입 역시 정례화해 탄력적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설명이다. 그간 RP 매각은 매주 목요일 정례적으로 이뤄졌으나 RP 매입은 필요시 비정례적으로 진행됐다.
정례 RP 매입으로 수급 균형 맞추고 낙인효과 줄인다
공대희 한은 금융시장국 공개시장부장은 30일 서울 중구 한은 별관에서 열린 정책 심포지엄에서 '한은 공개시장운영: 걸어온 길과 나아갈 길' 세션 발표를 통해 이같이 밝혔다. 공 부장은 "최근 시장의 초과 유동성(현금통화와 지급준비예치금을 더한 본원통화) 규모가 줄고, 비은행 부문의 금융시장 비중 확대로 수요 불확실성은 커지면서 유동성 수급에 일시적 불균형이 발생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한은 공개시장운영도 유동성 흡수 일변도에서 벗어나 흡수와 공급을 병행하는 방식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만기가 길어 정책효과가 장기간 지속되는 통화안정증권으로 초과 유동성 대부분을 흡수하고, 단기물로 기민한 대응이 가능한 RP 매매로 상황에 따라 유동성을 흡수 또는 공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선 정례화한 RP 매입을 통해 예측 가능성을 높이고 필요량만 계획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 부장은 "예를 들어 기존엔 초과 유동성 100에 대해 80은 통화안정증권으로, 20은 RP 매각으로 대응했다면 초과 유동성이 70으로 줄어든 상황에선 통화안정증권으로 80을 대응하고 나면 오히려 10만큼은 RP 매입을 통해 시중 유동성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며 "통화안정증권 규모를 줄일 대로 줄인 상황에서 구조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짚었다.
RP 매입과 매각을 병행하는 공개시장운영으로 '유동성 부족 부문에 공급, 잉여 부문에서 흡수'가 이뤄지면 자금의 원활한 순환이 가능하고, 부문 간 수급 불균형도 해소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RP매입을 통한 유동성 공급이 정례화되면 중앙은행으로부터의 자금조달에 대한 부정적 인식, 즉 낙인효과의 감소도 기대할 수 있다.
공개시장운영의 가장 기본적인 역할은 '초단기 시장금리가 정책금리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한은은 통화정책 운영방식으로 '코리도(corridor) 시스템'을 채택, 정책금리를 중심으로 상·하한 금리 구간을 설정해 단기시장금리가 이 범위 내에서 형성되도록 유도하고 있다. 외환보유액을 확충하고 환율 변동성을 완화하다 보면 그 과정에서 유동성이 필요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는데, 이는 한은이 통화안정증권, RP 매매, 통화안정계정 등을 활용해 흡수한다.
시중 유동성을 풀어 물가와 환율 상승 등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일축했다. 공 부장은 "비은행 등 플레이어가 늘면서 필요한 곳에 흘러가지 못해 수급 불균형이 발생하는 것인데, 한은이 정례적으로 필요 수준만 진행해 균형을 잡는 마중물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풀리는 곳이 있으면 묶이는 곳이 있어 균형을 맞추는 것이지, 총량 공급이 아니다. 심리적인 영향이 일부 작용할지는 몰라도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는 데 기술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없다"고 강조했다.
정례 RP 매입 도입 시 만기는 다양한 방안을 놓고 검토 중이다. 그는 "매입 시 6일물까지는 기준금리를 고정금리로 하고, 7일물부터는 기준금리를 최저금리로 해 높은 금리부터 낙찰을 시키는 방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과 유동성 감소·수요 불확실성 확대…기조적 변화, 대응 방식 바뀌어야
시중 초과 유동성 규모가 줄어든 건 경상수지 흑자 규모가 추세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데다 거주자의 해외증권투자가 급증하면서 국외부문에서 유동성 공급이 감소한 영향이다.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한국은행과 국민연금 간 외환스와프도 지급준비금 공급을 줄이는 요인으로 가세했다. 이런 구조적 변화로 기조적 유동성 흡수 수단인 통화안정증권 발행 잔액은 2015년 말 180조9000억원에서 지난해 말 115조7000억원으로 급감했다. 경제규모 확대로 민간의 화폐수요가 증가하는 등 본원통화 수요가 꾸준히 늘고 있다는 점도 초과 유동성 규모를 줄이는 데 영향을 미쳤다. 2000년대 초 20조원 수준이었던 민간 보유 현금통화 잔액은 지난해 말 193조원 규모로 늘었다.
농협·새마을금고 등 비은행예금취급기관, 보험사, 증권사 등 비은행 부문이 국내 금융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금융시장의 잠재적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 역시 커졌다. 비은행 부문의 총자산은 2010년 이후 연평균 8.5%씩 증가해 2023년 말 기준 금융권 총자산의 59.5%를 차지했다. 비은행금융기관이 시중 유동성 및 초단기 시장금리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콜금리의 변동성 확대 가능성이 커졌다. 비은행예금취급기관의 수신 규모가 커지면서 이들 기관의 대규모 예금인출 발생 시 금융시장 전반의 위기로 확산할 가능성도 커졌다.
새로운 지급결제수단의 등장, 금융의 디지털화 진전 등도 본원통화 수요 불확실성을 키웠다. 신용카드·각종 '페이' 서비스 등 현금을 대체하는 새로운 지급결제수단은 민간 화폐수요의 변동성을 높여 지급준비금 수요 예측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인터넷전문은행 설립, 모바일 기반 비대면 금융거래 확산 등 금융의 디지털화 진전으로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 손상 시 단기간 내 대규모로 예금이 인출되는 디지털 뱅크런 가능성 역시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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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주요 유동성 흡수 수단이자 한은의 대표적인 증권성 부채인 통화안정증권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재점검도 병행해야 한다고 봤다. 향후 지급준비금 수요가 지속해서 확대할 경우를 대비해 추가적인 유동성 공급 수단 확충 방안도 선제 검토 차원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공 부장은 "기조적인 지급준비금 공급이 필요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면 선진국 중앙은행이 활용하고 있는 장기 RP 매입과 유사한 제도의 도입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당장 도입 시기나 내용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김유리 기자 yr61@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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