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인터뷰]스웨덴 예테보리대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
파비오 안조릴로 연구원
尹 계엄 시도 폭력 위험성 분명 존재
민주주의 발전 꺾인 국가로 분류
계엄 저지 위해 시민들 단결
韓 민주주의 강점 잘 보여줘
"폭력이 실제로 사용되지 않았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계엄령을 발동하려 했다는 사실 자체입니다."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후퇴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한 스웨덴 예테보리대학 산하 민주주의다양성연구소(V-Dem·Varieties of Democracy Institute)의 파비오 안조릴로(Fabio Angiolillo) 연구원은 12·3 비상계엄 사태가 수준 강등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매년 세계 각국의 민주주의 수준을 지수화해 발표하는 V-Dem은 평가 대상 179개국의 민주주의 척도를 ▲자유 민주주의 ▲선거 민주주의 ▲선거 독재체제 ▲폐쇄된 독재체제 등 4개로 나눈다. 한국은 2023년까지만 해도 '자유 민주주의' 단계에 해당했지만 이달 발표된 지난해 결과 보고서에서 분류가 한 단계 낮은 '선거 민주주의'로 강등됐다.
'2025 민주주의 보고서' 집필을 주도한 안조릴로 연구원은 20일 아시아경제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 시민 자유에 대한 공격, 전반적인 한국 사회의 안정성 문제를 민주주의 후퇴 원인으로 제시했다. 그는 "한국에서 마지막으로 계엄령이 선포된 것은 전두환 정권 시절로 당시 대규모 학살이 있었다"며 "이번 계엄령이 실제 폭력을 동반하지 않았다고 해도 과거 사례를 고려했을 때 그 위험성은 분명히 존재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안조릴로 연구원과 일문일답.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이 강등된 주된 이유는 무엇인가.
▲자유 민주주의에서 선거 민주주의로의 강등은 주로 법률 접근성과 공정한 법 집행 관련 요소에 영향을 받는다. 2023년까지 한국은 법률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이 매우 강하다고 평가됐다. 즉 법이 공정하게 제정되고 임의로 시행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작년에 한국에서 일어난 일들은 당연히 법 집행의 투명성과 예측 가능성을 떨어트렸다. 정확히 말하면 계엄령 시행 방식과 이후의 여파 때문이다. 윤 대통령의 계엄령 시행은 법 집행의 명확한 연결고리가 부족했다. 계엄 사태는 한국의 법 제정이 이전보다 예측 불가능해진 주요 원인이 됐다. 한국은 계엄 사태 이후 수개월 동안 정치적 혼란을 겪고 있다.
-세부 지표 중 하나로 공공선 및 이성적인 관점에서 정치적 결정이 내려지는지를 측정하는 '숙의 민주주의 지수'도 순위(2023년 36위→2024년 48위)가 크게 떨어졌다.
▲윤 대통령 취임 이후 일부 민주주의 요소가 감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예컨대 언론의 자유 침해, 행정부의 권한 확대 시도 등이 포함된다. 윤 대통령의 선거 운동 역시 매우 공격적이었다. 정치적 상대방을 공격하고 사회를 양극화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것은 한국의 권위주의 정치를 강하게 하는 원인 중 하나가 됐다. 이러한 요소들이 한국 민주주의를 약하게 만들었지만, 일시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방향성의 변화인지는 불분명하다. 이미 '2024 민주주의 보고서'에도 밝힌 대로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처벌하기 위해 강압적 조치를 취하고 성평등에 대한 공격을 감행해 민주주의 수준을 낮췄다. 이를 '종 모양의 반전(bell-turn)'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는 국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한국이 포함된다.
-집권여당 일부에서는 물리적 강압이 없었기 때문에 계엄령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한 생각은.
▲한국은 아주 높은 수준의 민주주의를 갖춘 나라이지만 여전히 매우 젊은 민주주의 국가다. 오랫동안 군사 정권 아래에서 지냈으며 군부에 의한 폭력 역사가 있다. 특히 1980년대 학살 사건은 여전히 많은 한국인의 기억 속에 남아 있으며 젊은 세대에도 전해지고 있다. 즉 한국인들은 군이 정치에 개입하는 것과 계엄령 선포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번 계엄령이 실제로 실행되지 않은 이유는 여당의 자제 때문이 아니라 시민들과 야당이 강하게 반대했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고, 야당 지도자들은 국회에서 계엄령을 저지하려고 노력했다. 야당과 시민들의 반발 덕분에 민주주의가 지켜졌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보수진영에서는 과거 부정 선거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선거 절차를 조작했다는 주장인데, 이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2020년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다. 선거에서 패배한 후보가 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요소 중 하나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 세력이 계속해서 선거 결과를 부정한다면 이는 민주주의 국가가 독재 체제로 변할 가능성을 높이는 위험한 징후다.
-트럼프 대통령처럼 윤 대통령의 개인적 성향도 민주주의에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나.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은 비슷한 유형의 지도자다. 사회적 갈등을 조장하고, 반대 세력을 적으로 규정하며 권력을 강화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이런 지도자들은 단순히 법이나 정책을 통해 민주주의를 약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폭력적인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트럼프 대통령의 2021년 의사당 폭동 선동, 윤 대통령의 계엄령 시도 등은 모두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는 위험한 사례들이다.
-전 세계적으로 권위주의 국가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반(反)민주적인 정치 세력이 선거를 통해 점점 더 많이 당선되고 있다. 터키의 에르도안, 인도의 모디, 헝가리의 오르반, 브라질의 보우소나루 등이 대표적 사례다. 이들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은 후 점차 행정부의 권력을 강화하고 민주주의 기관들을 약화하는 전략을 쓴다. 현재 세계적으로 권위주의가 확산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경제적 불황이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진다고 생각하나.
▲경제적 후퇴와 불평등의 증가가 반민주적인 정당들이 등장하는 근본 원인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경제 성장을 둔화시키고 불평등을 심화시킨 기존 정부에 반발해 유권자들이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들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쳐 반민주적인 정당들이 부상할 가능성을 높인다. 높은 불평등 수준은 민주주의에 매우 위험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덴마크가 민주주의 보고서에서 전체 국가 중 1위를 차지했다. 덴마크는 민주주의에서 어떤 강점을 보이나.
▲덴마크는 물론 민주주의 지수에서 상위권을 차지한 나라, 에스토니아와 스위스, 스웨덴 등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거의 없다. 이들 국가는 매우 유사한 수준의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있다. 전반에 걸쳐 매우 높은 수준의 민주적 원칙을 준수한다. 선거 절차는 극도로 자유롭고 공정하게 진행되며 정치 체제의 모든 부분에서 민주적 원칙을 지키려는 강한 의지가 있다. 법률 접근성과 사법 투명성, 개인의 자유 보장, 시민·사회단체 활동 참여의 용이성 측면에서도 최고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민주주의 점수가 100점 만점을 기록한 국가는 없지만, 덴마크를 비롯한 상위권 국가들은 민주적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이를 정책과 실천에 반영하려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더 성숙해질 수 있는 방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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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의 가장 큰 강점은 시민 사회와 정치적 참여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특히 2024년 계엄령 저지 사태에서 보여준 시민들의 단결력은 한국 민주주의의 강점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려는 의지를 계속해서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안조릴로 연구원은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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