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점점 줄어드는 초콜릿 원료, 카카오 콩
공급 줄자 가격 상승
성장 느리고 재배 까다로운 작물
대기업들, 대체 초콜릿으로 눈길 돌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2월 사이, 오리온·해태·롯데웰푸드 등 주요 식품 기업들은 초콜릿 및 초코 과자 가격을 인상했다.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가격이 사상 최고가를 기록하면서다. 카카오 콩(코코아)이 열리는 카카오나무는 재배하기 까다롭고, 성장도 오래 걸리며, 병충해에 취약해 과거부터 '멸종 위기설'이 돌던 작물이다. 유전자 편집(GM)으로 작물 수율을 끌어 올리기도 어려워, 식품 기업들은 코코아 함유량을 줄이거나 아예 없앤 '대체 초콜릿' 개발까지 나선 상태다. 시장에서 진짜 초콜릿을 쉽게 구할 수 있는 날이 앞으로 수십년 이내에 끝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서아프리카 두 나라에 달린 초콜릿 공급망
카카오나무는 환경에 민감하고, 건강도 쉽게 나빠져 아무 데서나 수확할 수 없다. 평균 18~32도 사이의 기온, 연간 1500~2000㎜의 강수량이 꾸준히 이어지는 곳에서만 병충해 없이 제대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지구에서 이런 기온을 유지하는 곳은 적도 부근뿐인데, 남미부터 아프리카 중앙부, 동남아시아 지역을 가로지르는 해당 지역은 '코코아 벨트(Cocoa belt)'로 불린다. 코코아 가루와 버터의 원료인 카카오 콩은 오직 코코아 벨트에 있는 나라에서만 열린다.
카카오나무가 벨트 전체에 고르게 분산된 것도 아니다. 실질적으로는 서아프리카의 코트디부아르, 가나 두 나라가 글로벌 코코아 공급의 절반 이상을 책임진다.
그러나 지구 평균 기온이 높아지면서 코코아 생산국의 작황은 점차 악화하고 있다. 국제코코아기구(ICCO), 가나 코코아 위원회(COCOBUD) 등 자료에 따르면 2023-24 코트디부아르의 코코아 생산량은 전년 대비 20% 감소했고, 가나의 코코아 생산량은 18% 감소했다. 수요공급의 변화에 민감한 선물 시장 가격도 높아지고 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미국 뉴욕상품거래소의 5월 만기 코코아 선물 가격은 톤(t)당 8150달러(약 1185만원)를 기록, 지난 1년간 20% 상승했다.
연약하고 생장 느린 카카오, 유전자 편집도 어려워
글로벌 초콜릿 기업들도 수십년간 카카오나무를 살리고자 했다. 병충해에 강하고 환경에 덜 민감한 코코아 종자도 개발해 봤다. 1984년 국제 협력을 통해 카카오나무의 유전체를 보존하는 '트리니다드 국제 카카오 유전자은행(ICGT)'이 설립됐으며, 질병 면역력을 강화한 CCN-51이라는 새 품종도 개발됐다.
하지만 새로운 종자가 현지 코코아 농업의 구원 투수인 건 아니다. CCN-51은 일반 코코아보다 병충해를 잘 버티긴 하지만, 맛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 고급 초콜릿 시장엔 좀처럼 침투하지 못하고 있다. 또 모든 코코아 농가가 CCN-51이라는 단일 품종만 사용하게 되면, 유전적 다양성이 부족해져 미래의 식물 전염병에 더 취약해진다는 역효과도 있다.
유전자 편집(GM) 기술에도 걸림돌이 있다. GM 기술을 도입한 새 종자를 농장에 뿌려 수확하며 실제 효과를 확인해야 하는데, 카카오나무는 꽃이 피는 데만 3년, 첫 열매를 맺는데 4~5년이 걸린다. 미국의 마즈, 스위스 네슬레 등 글로벌 초콜릿 기업들은 일찍이 코코아 종자 연구에 투자해 왔지만, 나무의 느린 생장 주기로 인해 진척 속도는 매우 느리다.
'코코아 없는 초콜릿'으로 관심 돌리는 기업들
글로벌 식품업계가 지금 당장 코코아 가루, 버터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초콜릿과 초코 과자의 코코아 함량을 낮추거나, 코코아 같은 맛이 나는 '대체 초콜릿'을 개발하는 것이다.
대체 초콜릿은 최근 초콜릿 대기업들이 주목하는 신기술로, 코코아의 함량을 극도로 줄이거나 아예 코코아가 들어가지 않은 초콜릿이다. 전통 초콜릿 강국인 유럽에선 지중해의 콩과 식물이 케럽(Carob)과 보리 맥아를 섞은 화합물로 유사한 맛을 내는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케럽 콩은 코코아와 질감이 유사하되 특유의 쓴맛은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 때문에 다른 곡물 가루를 혼합해 풍미를 보충한다.
영국 'WNWN(윈윈으로 발음)', 독일 '플래닛A', 이탈리아 '포레버랜드' 등이 케럽 대체 초콜릿을 연구하는 대표주자다. 대체 초콜릿 초코바 '촉넛(Chocnut)'을 만든 윈윈은 2022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국제 제과 컨퍼런스'에서 혁신상을 받으며 주목받았고, 다음 해엔 '허쉬', '캐드버리' 브랜드를 소유한 세계 최대 초콜릿 기업 몬델리즈와 파트너십을 맺었다. 몬델리즈는 북미에서 판매하는 일부 초콜릿 바, 초코 코팅 비스킷 제품에 윈윈의 대체 초콜릿 성분을 적용할 방침이다.
플래닛 A는 지난해 1540만달러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으며, 이미 대체 초콜릿 제품인 '초비바(Choviva)'를 연간 2000t 생산 중이다. 투자금을 통해 연간 생산량을 곧 1만5000t으로 늘릴 예정이며, 향후 독일을 넘어 영국·프랑스·미국 등에 제품을 유통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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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초콜릿 개발업체들은 이미 코코아 부족으로 인한 초콜릿 생산 병목이 시작됐다며, 대체 초콜릿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윈윈은 최근 공식 블로그에 게재한 글에서 "이미 허쉬, 캐드버리, 마즈 같은 기업들은 초콜릿 가격을 인상하거나 공장 인력을 감축하기 시작했다"며 "코코아 공급이 부족해져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앞으로 초콜릿 가격은 더 비싸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초콜릿 제조업체들은 비용 상승을 상쇄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라며 "대체 초콜릿은 진짜 초콜릿과 거의 비슷한 냄새, 강도, 녹는 성질, 맛을 가졌다. 특히 쿠키나 도넛, 비스킷의 코팅 용도로 적합"하다고 강조했다.
임주형 기자 skeppe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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