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으로 피난와 어렵게 생활하다 서울시 9급으로 출발, 1996년 6월 은평구청장을 마지막으로 34년 공직 마친 후 어려운 이웃 돕기 나서...2021년 정부 국민훈장 석류장 수여
관선 은평구청장을 지낸 올해 미수(88세)인 권오록 어르신이 퇴임 이후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22억원이란 거금을 기부한 사연이 알려져 화제다.
백경학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는 23일 페이스북에 ‘어떤 어른’이란 글을 올려서 알려졌다.
2019년 2월 푸르메재단 후원자 모임 ‘더미라클스’ 강연자로 김형석 연세대 철학과 명예교수를 초청, ‘100세 철학자가 터득한 삶의 지혜’라는 강연을 마련했다.
김 교수는 “여러분도 지금부터 행복하기 위해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사세요”라는 내용이 다음날 조간신문에 기사화됐다.
이날 오후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은행직원이 고객 한 분이 기부를 원하는데 어디로 기금을 보내면 될지 물어왔다. 잠시 후 확인해보니 1억원이 입금돼 있었다. 은행 직원을 설득해 보내신 분 연락처를 받고 재단 직원이 감사 전화를 드리자 그분이 대뜸 “김형석 교수님이 ‘먼 길 가는 사람은 꼭 필요한 것만 가지고 간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인생을 잘 살려면 꼭 필요한 것만 남기고 모두 남에게 주라’고 하신 말씀을 신문에서 봤다. 내가 느낀 바가 있어 장애어린이들을 위해 좋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 보냈다.
그러면서 만날 필요도 없고 앞으로 연락도 하지 말라고 전화를 끊더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백 이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이렇게 큰 기금을 주셨으니 꼭 찾아뵙고 영수증도 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연락을 해 겨우 청담동 2층 양옥집 어르신 댁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안내를 받아 2층 거실로 올라가니 초록우산, 적십자사, 사회공동모금회 등 감사패가 있더라고 회상했다.
권 어르신은“교수님이 가치 있게 돈을 쓰라고 해 기부했는데 그게 뭐 자랑거리인가요”라며 당시 연세 85세로 정정하시더라고 전했다.
북한 땅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갈현리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부친은 춘궁기가 되면 곡간을 열어 쌀을 나누어주고 소작료를 면제해주는 넉넉한 분으로 평생 한학을 공부한 부친은 교실 2개가 딸린 강습소를 차려 마을 사람들에게 글을 가르쳤다고 했다.
이런 가정에 6.25가 터져 남한으르 피난 와 고생고생하다 전쟁이 끝나고 고향 가까운 의정부에 터전을 잡고 대동상고와 건국대를 졸업, 1962년 서울시청 주사보(9급)로 들어가 34년 동안 공무원을 했단다.
당시 이원종 전 서울시장과 함께 인사과에서 근무한 사연, 이 전 시장은 나중 행정고시에 합격해 서울시장이 된 사연...그리고 자신은 1988년 서울 올림픽 때 새로 신설된 송파구 민원실장을 사연 등을 설명했다.
이후 1996년 6월 은평구청장을 마지막으로 34년 공무원 생활을 마쳤다고 전했다.
권 어르신은 “서울시에서 일하다 보니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며 퇴직하고 여유가 생기다 보니 가난했던 사람들이 생각나 그때부터 나누어야겠다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감사패도 영수증도 모두 필요 없다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가시더라고 전했다.
권 어르신은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남에게 베풀라고 말씀하진 적이 없어요. 이웃을 돕는 삶을 행동으로 보여주셨을 뿐입니다. 그 모습이 잊히지 않아요. 내가 기부하는 것도 아버지의 그런 모습을 본받으려는 노력입니다”고 말했다.
정부는 국민추천을 받아 평생 나눔을 실천한 권오록 어르신에게 2021년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여했다.
백 이사는 글 말미에 “올해 미수(米壽)를 맞으신 권오록 할아버지의 미소가 해맑다. 우리 사회에 큰 울림을 주시는 진정한 어르신이다”고 맺었다.
박종일 기자 drea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