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 코펜하겐을 가다②
'이게 바다라고?'
바다가 강처럼 도시를 가로지르는 코펜하겐
수변 따라 걷다보면 도서관, 운하, 궁전 등
코펜하겐 명소 한번에 즐길 수 있어
덴마크 코펜하겐은 '세계에서 가장 걷기 좋은 도시'라는 명칭답게 다양한 풍경을 보면서 산책을 즐길 수 있다. 오늘 소개할 코스는 항구 도시에 다양한 운하가 함께 공존하는 코펜하겐의 수변 산책로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바다의 풍경부터 덴마크 왕실의 궁전까지 코펜하겐의 명소를 한 번에 만끽할 수 있다.
오늘의 시작점인 코펜하겐 중앙역에서 1㎞가량 남동쪽으로 내려오면 탁 트인 물가가 나타난다. 강처럼 보이는 이곳은 사실 바다다. 덴마크에서 가장 큰 섬인 셸란섬 동안에 자리 잡은 코펜하겐은 인근의 아마게르섬에 걸쳐서 도시가 형성돼 바다가 마치 서울의 한강처럼 도시 한복판을 넓게 가로지르고 있다.
여기서부터 수변 산책로 칼베보드 볼게(Kalvebod Bølge)가 시작된다. 마치 파도가 치듯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레 바다와 도시를 다양한 높이에서 보게 된다. 바다 수영을 즐길 수 있는 작은 풀장과 카약을 타볼 수 있는 공간 등도 함께 마련된 종합 놀이 공간이다. 단순히 걷기 좋은 공간을 넘어 인간과 자연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는 코펜하겐의 도시 철학이 담긴 듯했다.
칼베보드 볼게를 지나 수변을 따라 10분 정도 걸어가면 덴마크 건축센터와 함께 일명 '검은 다이아몬드(Den Sorte Diamant)'라고 불리는 덴마크 왕립도서관 신관이 나온다. 구관의 장서 소장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1999년 지어진 건물이다. 검은 다이아몬드는 인간이 지식을 쌓기 전에는 단지 검은 상자이지만 도서관에서 지식을 쌓으면 지성으로 다이아몬드처럼 빛날 수 있다는 의미와 함께 검은색 대리석과 유리로 외관을 마감해 햇빛을 받으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모습을 함께 담은 별칭이다.
건축가 슈미츠 하메르 라센이 설계한 건물로, 지하에 위치한 미술관은 사람의 두뇌를 뜻하고 여기서 올라온 지식이 지상층에서 물결처럼 흐르는 가운데 이 지식을 다리와 무빙워크가 연결한다는 아이디어를 건축으로 구현해냈다.
이어 길을 따라 다시 15분가량 걸어가면 코펜하겐 여행의 핵심으로 꼽히는 뉘하운(Nyhavn)이 나온다. '새로운 항구'를 뜻하는 이름으로 1670년 만들어진 운하다. 과거에는 코펜하겐의 관문 역할을 하며 늘 떠들썩한 소음의 번화가였다. 동화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이 비싼 방값에 시달리느라 여기서만 세 번이나 이사했다는 일화도 있다. 안데르센이 살았던 집 중 하나는 이를 증명하는 간판을 달아놓기도 했다.
지금은 카페나 주점으로 변한 알록달록한 건물들이 운하와 어우러지면서 수변 도시 코펜하겐만의 정경을 자아낸다. 덴마크의 특산 음식인 오픈 샌드위치 '스모어브레드(smørrebrød)' 맛집도 많아 잠시 휴식을 즐기며 식사를 해도 좋다.
뉘하운을 충분히 즐겼다면 이제는 아말리엔보르궁전을 가 볼 차례다. 덴마크 국왕인 여왕 마르그레테 2세와 왕실 일가가 거주하는 궁전으로 여왕이 궁에 머무르고 있을 때는 덴마크 국기가 게양된다. 매일 12시에는 근위병 교대식도 빼먹지 말고 볼 만한 코펜하겐만의 구경거리다. 이 역시 평소에는 근위병들만 교대식을 진행하지만 여왕이 궁전에 머물 때는 군악대가 함께 행진곡을 연주하며 교대식을 진행한다.
다시 15분가량 걸어가면 오늘의 종점인 인어공주 동상에 다다른다. 안데르센의 대표작 '인어공주'의 주인공을 1913년 에드바르 에릭센이 동상으로 만들었다. 실제로 가보면 바다 위에 동상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 독일의 로렐라이 언덕과 함께 '유럽 3대 실망 관광지'로 꼽히기도 하지만 코펜하겐을 찾는 많은 이들이 여전히 인증샷을 위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동상은 코펜하겐의 상징인 만큼 다양한 수난을 당해오기도 했다. 목이 잘리는가 하면 동물보호 운동 단체의 소행으로 추정되는 페인트 테러를 받기도 했고, 지난 2일(현지시간)에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략 와중에 받침대가 러시아 국기 색으로 칠해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4일 찾은 동상에는 이 같은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근처 안내판에 붙은 'Enjoy, Don't Destroy(파괴하지 말고 즐기세요)'라는 스티커는 걸어오는 길에 마주쳤던 주덴마크 우크라이나 대사관 앞을 지키는 경찰 병력과 함께 씁쓸함을 자아냈다.
코펜하겐=이춘희 기자 spr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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