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1급수'로 만든다는 김영란법 시행이 한 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해당업종 종사자와 그 밖의 사람들 간 '동상이몽(同床異夢)'을 넘어 이제는 법리적 측면이든 정서적인 이유에서든 김영란법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뭔가 찔리나 보네' 식의 잠재적 브로커 취급을 한다. 증권가에서는 김영란법의 피해주와 수혜주를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으며 자영업자들은 벌써부터 매출에 지장을 받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의 민도(民度)는 김영란법의 도입취지인 1급수에서 살아가기에 적합한 수준인가. 흙탕물을 맑은 물로 바꾸는 것이 과연 생태계를 위한 절대 선(善)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과 주요 교역국 대부분이 속해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반부패 백서(Anti-Bribery Convention)' 따르면 최근 다른 회원국들도 이 같은 자정노력에 적극적인 분위기다. 그러나 일종의 가이드라인 즉 선물과 향응 그리고 편의제공에 대한 '방법론'의 측면일 뿐, 한국의 김영란법처럼 구체적으로 특정 업종이나 직군을 대상으로 지목하고 있지는 않다. 여기서 속인주의와 속지주의를 동시에 고려한다면 한국에 잠시 방문한 외국인도 김영란법의 적용대상이라는 사실이고 이는 곧 대한민국에 대한 해외 시각을 왜곡시킬 우려로 연결된다. 이른바 "오죽하면 저런 법이 만들어 졌나"의 측면에서다.
흔히 말하는 압축성장의 그림자는 한국식 인맥 문화와 맞물려 이른바 거마비나 급행료 같은 특이한 관행을 거부감 없이 우리 일상에 스며들게 했다. 소위 말하는 '인사가 만사'라는 한국에서는 다단계와 사이비 종교가 제일 전파되기 쉬운 환경이라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신용카드, 인터넷 가입 심지어 상조가입에도 모집인과 수수료가 존재하는 나라는 아마 우리가 유일할 것이다. 물론 중국의 '관시'를 비롯, 세계 어느 나라를 가도 소위 '사람 사는 세상'의 비슷한 문화는 찾아볼 수 있다. 게다가 어떤 분야든 경쟁과 불확실성이 과도한 요즘 세상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경계감을 아(我)와 피아(彼我)를 구분하는 과정을 통해 해소하기도 하는데 그 중 가장 친숙한 수단이 학연과 지연이고 또 자기들끼리만 '무언가'를 공유하는 것도 흔한 방법이다. 그렇다면 여기에는 자연스럽게 경계감 해제의'표현'이 뒤따를 것인데 김영란법은 이를 사실상 국가가 모니터링 하겠다는 취지다.
자본주의의 강국 미국의 경우, 가장 진화된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로비'를 합법화 해 '로비스트'를 연방 의회 사무처에 등록시키고 전문분야와 자격, 그리고 소득과 과세 등을 제도권 하에 두는 방식이다. 의회의 입법 활동에서부터 민간 비즈니스까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 어떤 결정이라도 누군가 이득을 보면 피해를 보는 쪽도 반드시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차라리 공개경쟁을 통해 직·간접으로 주요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장을 국가에서 열어 준 것이다. 미국의 로비업계 종사자는 약 10만명, 이들의 매출규모는 공식으로 10조원에 이른다. 우스갯소리로 뇌물이나 리베이트로 오고가는 돈은 지하경제에 속하지만 대신 거의 100% 소비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 같은 '뒷돈'이 지하경제 양성화에 가장 효과적인 처방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아무런 대가성 없는 일종의 '사교활동'까지도 법적인 테두리 안에 가두는 김영란법이 추석 연휴 열흘 뒤 시행되면 과연 진짜로 갇히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도 그동안 가까이든 멀리서든 함께 해온 사람들 간의 '교류' 그 자체가 아닐까.
김희욱 리앤모로우 상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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