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조금씩 진정되고, 몇몇 우리나라 기업들의 분기 실적이 기대를 상회하면서 금융시장은 안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제가 만난 기업임원들에게서는 무거운 표정이 읽힙니다. 4~5년 뒤의 미래 전망을 밝게 보는 이가 많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인구구조의 변화가 그 나라의 경제발전과 매우 높은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일이고, 우린나라의 급격한 노령화는 그 유례를 찾기 어려운 정도이니 말입니다. 거기에 이른바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에 근거한 급하고 복잡한 산업구조변동까지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몇몇 산업에서 패권의 이동이 일어날 것이고, 여기서 경쟁력을 잃으면 대규모 실업과 빈부격차의 파도까지 견뎌내야 할 것이라는 예상이 많습니다.
그러나, 막상 우리나라 기업들이 구글이나 테슬라 혹은 아마존과 같은 기업들과 맞상대하기로 결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들 기업이 보유한 상상하기 어려운 자본력은 차치하고서라도, 이들 기업이 우수한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게걸스러운 태도는 기를 꺾기에 충분합니다. 실리콘밸리 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 이스라엘의 우수한 인재들을 엄청난 규모로 채용하는 바람에 다른 기업들은 인공지능이나 센서분야 등에서 우수인력을 확보하는 것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 산업의 패권을 두고 경쟁을 벌이고 있는 이런 기업들만큼 빠르게 성장하면서 큰 수익성도 확보하고 있는 전혀 다른 종류의 기업들이 있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이런 기업들을 글로벌챌린저라고 명명하고 있습니다. 자국시장에서의 빠른 성장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기업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잘 알려진 화웨이나 타타, 그리고 샤오미와 같은 회사들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기업들은 생각보다 매우 많습니다. 예를 들면 인도의 선(Sun)제약은 10년 동안 매출이 약 15배나 성장하면서 매출 5조에 이르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했고, 그 과정에서 방글라데시, 네덜란드, 미국의 동종기업들을 인수하는 기염을 토했습니다. 중국과 인도출신 기업들이 많기는 하지만, 필리핀이나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페루, 터키 등에서 탄생한 기업들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 기업들의 성장속도와 수익성은 구글이나 아마존이 부러워할 정도입니다.
사실 삼성이나 LG, 현대자동차도 이런 자랑스러운 성공의 기억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기억을 차츰 과거의 것으로 여기고 있는 동안 세계 곳곳의 글로벌챌린저들은 거꾸로 우리기업의 성공에 자극 받아 꿈을 키우고 있는 셈입니다. 물론, 이들 가운데에 상당수는 중국이나 인도처럼 국가의 빠른 성장에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글로벌챌린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이나 페루, 콜롬비아, 이집트, 심지어 아랍에미리트에서도 속속 탄생하고 있습니다. 빠르게 성장하는 나라에서 태어난 기업만이 글로벌챌린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시장에 신속하게 접근한 기업이 기회를 잡았다는 의미입니다.
한국의 구글, 한국의 아마존이라는 담대한 꿈도 버릴 이유가 없지만, 우리가 올라탈 기회는 다른 곳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 우울한 전망을 멈추고 눈을 들어 기회를 찾아볼 일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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