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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최초의 PGA 멤버' 찰리 시포드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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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 흑인 최초로 PGA투어 우승한 '흑인 골퍼 투쟁의 역사'

'흑인 최초의 PGA 멤버' 찰리 시포드는 누구? 찰리 시포드. 사진=Getty 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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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단지 플레이만 할 수 있게 해 달라(Just Let me play)."

4일(한국시간) 타계한 찰리 시포드(미국)의 자서전 제목이다. 흑인선수들의 '고난과 핍박의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대목이다. 사실 골프는 오랫동안 '백인들의 전유물'이었고, 흑인들은 불과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프로무대에는 출전조차 할 수 없었다.


1960년 이전 흑인들이 참가할 수 있는 대회는 UGA(United Golf Association)투어가 전부였다. 하지만 이 투어는 퍼블릭코스에서만 열리는데다가 상금 규모도 형편없었다. 시포드와 빌 스필러, 테디 로즈, 피트 브라운, 리 엘더 등 실력 있는 흑인선수들이 미국프로골프(PGA)투어 진입을 위해 끊임없이 투쟁한 이유다.

시포드가 바로 1960년 PGA투어의 '백인만이 멤버가 될 수 있다'는 규정을 바꾸고, 정식으로 투어카드를 획득한 흑인 최초의 PGA 멤버다. 1년 뒤인 1961년 그레이터 그린스보로오픈에 출전했다. 1957년 이미 롱비치오픈을 제패했지만 이 대회는 공식 투어로 인정받지 못했다.


시포드는 그러나 선수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모욕적인 일을 수없이 겪어야 했다. 1952년 피닉스오픈에서는 첫 번째 홀 그린 홀 안에 인분이 들어있을 정도였다. 결국 아내가 나서 인분을 치우고 홀을 바꾼 뒤에야 경기를 계속할 수 있었다. 살해 위협까지 이어졌다. "(백인들의 아성인) 남부지역 대회에 나갔을 때는 온갖 협박에 공포를 느꼈을 정도"라고 회고했다.


시포드는 그래도 1949년부터 1984년까지 총 494경기에 등판해 1967년 그레이터 하트포드오픈에서 흑인 최초의 PGA투어 우승을 일궈내는 등 1969년 로스앤젤레스오픈까지 2승을 포함해 '톱 10' 진입을 51차례나 기록하는 출중한 기량을 과시했다. 2004년에는 흑인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고, 지난해 11월에는 백악관에서 대통령 자유훈장까지 받았다.


마스터스의 '인종장벽'은 넘지 못했다. 흑인들이 당시 오거스타내셔널의 그린을 밟아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백인의 캐디가 되는 것뿐이었다. 오거스타의 고집은 1975년에서야 흑인에게 클럽하우스를 개방했고, 그 첫 번째 주인공은 엘더였다. 전년도 몬샌토오픈 챔프 자격으로 출전권을 얻은 엘더가 코스에 등장하자 흑인 캐디들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그로부터 정확하게 20년 후인 1995년 아마추어골프계를 평정한 타이거 우즈(미국)가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프로에 데뷔했고, 다시 2년 후인 1997년 드디어 흑인 최초로 마스터스를 정복했다. 우즈는 시포드가 대통령 훈장을 수상하자 트위터를 통해 "시포드의 희생이 새 역사를 창조했고, 내가 탄생하는 밑거름이 됐다"고 축하의 말을 전했다.



김현준 골프전문기자 golfkim@asiae.co.kr
<ⓒ투자가를 위한 경제콘텐츠 플랫폼,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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