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이정일 기자] 허창수 회장은 시장에서, 정병철 부회장은 호텔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를 이끄는 두 수장의 상반된 행보가 뒷말을 남기고 있다. 전경련이 20일 언론에 배포한 두 장의 사진이 발단이었다. 이날 먼저 배포된 사진은 정병철 부회장이 반기문 UN 사무총장과 악수하는 모습을 담았다. 미국 뉴욕에서 개최된 코리아 소사이어티 연례 만찬장이었다.
만찬에서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위원장인 한미재계회의와 미한재계회의가 공동으로 올해의 '밴 플리트상'을 수상했다. 당연히 만찬의 주역은 현 회장이었지만 사진 속 주인공은 엉뚱하게 정 부회장이었다.
그리고 두번째 사진. 이번에는 허창수 회장이 폭염 속에 재래시장을 방문하는 모습이었다. 허 회장은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서울 강북 수유재래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격려했다. 넥타이를 매지 않은 수수한 모습이었지만 35도가 넘는 찜통 더위에 얼굴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랐다.
물론 회장이라고 험한 일정을 소화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때로는 부회장이 더 격조높은 행사에 참석할 수도 있다. "회장이 시장을 방문하고 부회장이 미국을 찾은 것은 모두 중요한 일인 만큼 '경중'을 가리는 게 무의미하다"는 전경련의 설명도 그래서 일면 수긍이 간다.
그럼에도 뒷맛이 개운치 않은 이유는 뒤바뀐 주인공 때문이다. 밴 플리트상은 한-미 우호 증진에 공헌한 인물에 주어지는 매우 각별한 상이다. 바쁜 일정도 마다않고 반기문 사무총장이 만찬장을 찾은 까닭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스포트라이트는 정 부회장이 아닌 현 회장이 받았어야 했다. 반 총장의 축하도 현 회장의 몫이어야 옳았다.
흔히 전경련 부회장을 회장보다 '힘이 쎈 자리'라고 한다. 명예직인 회장과 달리 상근 부회장은 인사와 재무 등 실권을 쥔 실질적인 수장이기 때문이다. 전경련 부회장이 되면 저절로 얻는 직함도 수십개에 달한다. 최근에는 일각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연구원 대표 자리까지 꿰찼다.
재계에서 정 부회장의 '과욕'을 지적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따지고보면 주인공이 뒤바뀐 만찬회 사진도 과욕의 한 단면이다. 반 사무총장과 악수하는 정 부회장, 그리고 재래시장 상인과 악수하는 허 회장의 사진이 교차하면서 씁쓸한 입맛을 남기는 이유다. 한 재계 관계자는 "회장보다 힘이 쎈 부회장의 현 주소를 보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이정일 기자 jay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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