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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황 그늘’에 묻힌 최저임금제

-시급 4000원 규정 안 지키는 것 알아도 해고 당할까 항의 못해

-지난해 최저임금제 위반 단속 적발율 43.4%…2007년은 22.8%



전업주부였던 최 모씨(38)는 지난해 11월부터 대전시내 한 음식점에서 음식 나르는 일을 시작했다.

결혼 뒤 집안일만 해온 터지만 최근 남편이 실직을 당하면서 생계를 위해 일자리를 마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가 매일 13시간씩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의 고된 노동을 견디며 받는 한 달 월급은 110만원 남짓.

오전 9시30분에 출근, 일을 마치는 10시30분까지 점심·저녁 식사시간을 빼고는 쉴 틈도 거의 없다.

최 씨가 받는 월급은 최저임금에 못 미친다. 올해 최저임금 기준이 시급 4000원이므로 한 달에 적어도 124만8000원을 받아야 ‘적법’하다.

그녀는 “알고는 있지만 요즘엔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 최저임금은커녕 이 자리라도 붙들고 있어야 겨우 가정을 꾸려갈 수 있다”고 하소연했다.

대학생 정 모씨(25)도 사정은 비슷하다. 정 씨는 지난 1월과 2월 내내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매달 90만원씩을 받았다.

주 6일,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주당 72시간을 일한 그는 최저임금기준에 따라 115만2000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싫은 내색 한번 못했다.

정씨는 “9번의 실패 끝에 어렵게 잡은 알바(아르바이트)라 그냥 일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면서 “빨리 졸업해 좋은데 취직하면 최저임금 같은 건 신경 안 쓸 날이 올 거라 믿는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불황의 그늘’이 짙어지며 법적인 임금권리를 포기하면서까지 일자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스스로 ‘시간당 4000원’으로 정해진 최저임금의 법적 보호망에서 비껴 있는 줄 알면서도 해고에 대한 불안감으로 토를 달지 못하고 묵묵히 일하는 것. 이른바 ‘돈 보다 일자리’인 셈이다.

이런 상황은 특히 영세서비스업에서 생기는 경우가 잦다. 손님이 끊기면 곧바로 임금 주는 일이 버거울 수밖에 없어서다. 일부에선 구직난을 악용해 일부러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급여를 주는 악덕사업주들도 활개를 펴고 있다.

노동부는 해마다 전국에서 최저임금법 위반이 의심되는 사업장을 무작위로 골라 단속한다.

지난해에도 2만4915곳을 점검한 결과 이 중 43.4%(1만813건)의 최저임금제 위반사례를 적발했다.

이는 2007년 2만224곳을 단속해 4612건(22.8%)을, 2006년엔 1만7732곳 중 3440건(19.4%)의 위반사례를 찾아냈던 것보다 크게 늘어난 결과다.

민주노총 최저임금제 담당자는 “최저임금제 위반사례가 급증한 때가 경제위기가 본격화된 때와 맞아 떨어진다”면서 “지불능력이 떨어진 사업주들이 최저임금을 어기는 횟수가 늘어났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노동부 관계자는 “지난해 최저임금법 단속실적이 급증한 게 불황의 여파라고 풀이할 수도 있겠지만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단속한 통계가 아니라 자칫 오류가 생길수도 있다”고 조심스런 해석을 내놨다.


노형일 기자 gogonh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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