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앤비전]누가 이 시대의 이순신을 꿈꾸는가

김주하 NH농협은행장

2014년 여름 영화 '명량'으로 한반도가 들썩였다. 관객 수는 1700만명을 훌쩍 넘어섰고 이순신을 주제로 한 방송과 기사가 연일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이처럼 이순신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얼까. 아마도 영웅에 대한 갈망 때문이리라. 혼란스러운 정국, 저성장 경제, 세월호 참사와 윤일병 사망사건 등 불행한 사고들을 목격하면서 우리는 이 난국을 타개할 영웅의 등장을 애타게 기다려 왔는지도 모른다. 그러한 열망이 400여년 전의 이순신 장군을 다시금 불러낸 것은 아닌가 짐작해 본다.그런데 우리는 흔히 이순신 장군을 위인 전기 속 타고난 영웅의 모습으로 기억한다. 어렸을 때부터 대장 역할을 도맡아 했고 우수한 성적으로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23전23승이라는 전공을 올린 천부적 해군 장군으로 말이다. 그러나 역사 기록에 의하면 그는 타고난 영웅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는 32세라는 늦은 나이에 무과에 합격했고 그 성적 또한 우수한 것은 아니어서 종9품의 미관말직으로 무관 생활을 시작했다. 그마저도 순탄치 않아 파직과 백의종군을 경험하며 낮은 직급을 전전했다. 전라 좌수사 부임 전까지 그는 야전 경험은 주로 북쪽 변방에서 여진족을 수비하는 전형적인 육지전 중심이었으니 노련한 해전 전문가도 아니었던 셈이다.그렇다면 평범했던 그가 어떻게 민족의 영웅으로 이름을 남길 수 있었을까. 그것은 철저한 원칙 준수와 치밀한 준비로 대변되는, 그의 평범함 속에 감춰져 있던 비범함이 발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성품은 상관의 부당한 청탁은 단호히 거절하는 대쪽 같은 것이었다. 유성룡이 그를 지방 현감에서 전라좌수사라는 7계급 높은 자리에 천거한 이유도 이순신의 원칙을 중시하는 강직한 성품 때문이었다. 또한 당시 세자였던 광해군 주관 과거 시험에 전장을 비울 수 없다는 이유로 휘하 병사들을 불참시킨 사건은 그의 원칙주의적 자세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원칙주의는 엄격한 군율 적용과 군대 기강 확립으로 이어져 승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한편 그는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자마자 분주히 전쟁에 대비했다. 전투에 임함에 있어서는 '미리 이겨 놓고 난 후에 싸운다'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의 자세로 면밀히 상황을 살피고 나아갈 때와 물러설 때를 구분하여 이기는 전략만을 구사하였다. 이는 그의 철두철미한 준비 자세와 치밀함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그의 원칙적인 삶과 치밀함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특히 이순신을 꿈꾸는 리더들이 반드시 새겨야 할 덕목이라고 생각된다.여기서 문득 의구심을 가져본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살아 돌아온다면 이 시대는 과연 그를 영웅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지금 우리 사회는 평범한 인간이 비범한 능력을 발휘할 만한 여건을 갖추고 있는지 생각해 볼 문제다. 최고결정권자의 지시에 맞서 본인의 소신과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 가능한가. 파직과 백의종군이라는 오점이 있는 인사도 요직에 재기용 될 수 있는가. 단기 업적주의가 만연한 조직 사회에서 전쟁 준비 같은 장기 전략이 수용될 수 있는가. 이순신이 그랬던 것처럼 능력 중심의 파격승진이 용납되는가. 꼬리에 꼬리를 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무릇 지금은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시대이다. 과거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이 있었다면 현재는 사회 각 분야의 수많은 영웅들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 구조와 시스템이 영웅 탄생에 적합하지 않다면 막연한 기다림보다 시스템 개선에 전력하는 것이 급선무일 것이다. 내부 기강은 철저히 바로 세우되 인사ㆍ조직ㆍ의사소통은 더욱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단기적 임시 대응보다는 장기적 관점의 발전 방향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특히 필자가 몸담고 있는 금융권은 이러한 노력이 더욱 절실한 상황이다. 각종 사고와 분란이 사회적 이슈가 된 지 오래이며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144개국 중 80위에 그치고 있다. 한 은행의 수장을 맡고 있는 나부터 반성할 문제이며 근본적 변화를 위한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부디 각계각층의 고민과 노력이 함께 어우러져 이순신 같은 불세출의 영웅은 아닐지라도 사회 곳곳의 작은 영웅들이 속속 탄생하기를 기대해 본다.김주하 NH농협은행장<ⓒ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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