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EEPA 근거 상호관세 무효
한미 협상 구도 변화 주목
정부, 영향 분석 착수
미국 연방대법원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국가비상권 기반 관세에 대해 위법 판단을 내리면서 한국의 대미 통상 전략에도 적지 않은 변수가 생겼다. 당장 철강·자동차 등 주력 수출 품목에 대한 기존 관세가 뒤집히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 행정부의 전면적 관세 카드에 제동이 걸렸다는 점에서 향후 한미 협상 구도에는 변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 연방대법원은 20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근거로 전 세계 수입품에 부과한 광범위한 관세가 법적 권한을 초과했다며 무효라고 판결했다. 9명의 대법관 중 진보 성향 3명은 물론 보수 성향 대법관 3명까지 '무효' 의견에 합류했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은 "대통령은 금액·기간·범위에 제한이 없는 특별한 권한을 일방적으로 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IEEPA 문구가 관세에 적용될 수 있다고 의회가 명시한 법률은 제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IEEPA는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미 헌법은 관세 설정 권한을 의회에 부여하고 있다. IEEPA는 '비정상적이고 중대한 위협'이 존재할 경우 대통령이 수출입을 규제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관세를 명시적으로 허용하는 조항은 없다. 트럼프 이전 어떤 대통령도 해당 법을 근거로 관세를 부과한 전례가 없다는 점도 재판부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2025년 2월 캐나다·중국·멕시코가 펜타닐 등 불법 마약의 미국 유입을 충분히 차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25%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4월 2일 '해방의 날(Liberation Day)'을 선언하며 거의 모든 국가의 수입품에 기본 10%의 일괄 관세를 적용했다. 일부 국가에는 추가 고율 관세도 매겼다. 이번 판결로 이들 IEEPA 기반 관세는 효력을 상실하게 됐다.
다만 철강·알루미늄 관세처럼 무역확장법 232조 등 다른 법률을 근거로 한 조치는 유지된다. 이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가 다른 법적 근거를 활용해 관세를 재부과하는 방안을 모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국에 미치는 직접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판결로 무효가 된 것은 IEEPA를 근거로 한 일괄 10% 상호관세와 일부 국가에 대한 추가 관세다. 미국이 2025년 상반기 발표한 '상호관세' 조치에는 한국도 포함됐으나, 이후 한미 간 통상 협정을 통해 관세 체계가 조정됐다. 미국은 한국산 제품에 대해 당초 발표된 25% 관세율을 협정에 따라 15%로 낮추는 등 조정된 관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 부과된 관세는 단순히 IEEPA 하나의 법적 근거로 시행된 것이 아니라, 한미 양국 협상과 다른 법률적 근거가 함께 적용된 구조다.
특히 철강·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에 적용 중인 관세는 무역확장법 232조 등 다른 법률에 근거한 것으로, 이번 판결과는 무관하다. 산업계에서도 "IEEPA 기반 전면 관세 리스크는 줄었지만, 통상 부담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다"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럼에도 이번 판결은 상징성이 크다. 비상권을 동원한 전면적 관세 전략에 법적 한계가 설정되면서, 향후 미국 행정부가 동맹국을 상대로 일괄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통상 이슈가 의회 중심으로 이동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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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가에서도 이번 결정은 한국 경제에 즉각적 충격을 주는 사안이라기보다, 미국 통상 정책의 법적 틀을 재정립하는 계기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한미 간 전략적 투자, 공급망 협력, 관세 협상 등 굵직한 현안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행정부의 '전면 관세 카드'가 약화됐다는 점은 협상 환경에 새로운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세종=강나훔 기자 nahu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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