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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첨단중독시대, 포스트휴먼으로 산다는 것
최종수정 2019.09.18 15:25기사입력 2019.09.18 15:25

끊임없는 기술의 진화…미래 인류의 삶 풍요롭게 하는지 되돌아볼때
'알파고 쇼크 3년' AI 눈부시게 발전·자율주행 가능한 모빌리티 기술
삶 편하게 해주지만…주체적으로 하던 일 기계에 뺏긴 것은 아닌지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첨단중독시대, 포스트휴먼으로 산다는 것 김병민 과학저술가

2016년 등장한 인공지능(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를 기억하실 겁니다. 알파고의 실제 이름은 한국의 이세돌 9단과 대결했다는 이유로 '알파고 리(Lee)' 입니다.


물론 AI에서 알파고가 처음은 아닙니다. 알파고가 등장하기 20여년 전에도 체스와 퀴즈게임으로 인류를 굴복시킨 IBM의 딥블루와 왓슨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류는 기계의 도전을 약한 지능으로 규정하고 그 한계를 폄하했죠. 그런데 알파고 리는 전과 달랐습니다. 이세돌과 대국 후 AI는 모든 정보통신과 전자산업의 핵심이 됐죠.


알파고 리는 지금 어떻게 변했을까요. 우리는 알파고가 가져온 AI와 4차 산업혁명 프레임에 갇혀 알파고를 잊었습니다. 이세돌을 이긴 알파고 리는 이듬해 알파고 마스터(Master)라는 이름으로 커제 9단에게 압승합니다. 결국 한 번이라도 AI에게 이겨본 마지막 인간은 이세돌인 셈이죠.


이후 알파고는 인류와 대결을 끝내고 게임의 기보조차 보지 않고 규칙만으로 자기와 대국하며 학습하는 기계로 진화해 '알파 제로(Zero)'가 됩니다. 알파 제로는 바둑뿐 아니라 일본 장기와 서양 체스 AI 프로그램인 스톡 피시, 엘모마저 꺾어버립니다. 원래 알파고 이름에 있던 '고(Go)'는 바둑을 뜻하는 일본어인데 알파고가 다른 영역으로 확장했기에 이름에서 빠졌습니다. 우리가 잠시 한눈 판 3년 남짓 사이 엄청나게 진화한 것입니다.

이런 성장의 동력으로 소프트웨어의 진화 못지 않게 하드웨어도 한몫합니다. AI는 학습 차원에서 규칙과 빅데이터를 빠른 속도로 처리해야 하니까요. 그 중심에는 최근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 품목을 규제하며 떠오른 '반도체'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산처리와 메모리 장치의 실체인 반도체도 성장했다는 뜻입니다. 프로그램의 진화는 알 것 같은데, 반도체의 성장은 정확히 어떤 의미일까요.


반도체 성능은 미세공정으로 향상됩니다. 같은 면적의 실리콘웨이퍼 위에 미세하게 회로를 그릴 경우 회로 선폭이 줄어 전자의 이동은 빨라져 처리속도가 증가한다는 겁니다. 물론 제한된 공간에 더 많은 회로를 넣을 수 있어 부피도 감소합니다. 결국 반도체는 미세화가 핵심 기술이죠. 현재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이 미세선폭을 그리는 세계 최고의 기술을 지닌 셈입니다. 이제 우리 기업은 그 선폭을 이론적으로 가능한 한계까지 도전하는 단계에 있습니다.


일본이 규제한 포토레지스트는 이런 미세선폭을 그리는 데 필요한 감광액입니다. 결국 우리 기업들의 개발을 늦춰 경쟁에서 뒤지게 하는 게 일본의 목적입니다. 그 덕에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 같은 화학물질이 반도체 공정에 필수 부품 소재라는 걸 온 국민은 알게 됐습니다. 이런 반도체 성장의 역사에는 흥미로운 규칙이 있습니다. 그 시작은 1965년 반도체 회사 페어차일드의 한 직원이 전자산업의 미래를 예측한 잡지 기사입니다.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첨단중독시대, 포스트휴먼으로 산다는 것

전자산업은 1947년 트랜지스터 발명과 함께 시작돼 그때부터 하나의 실리콘 반도체 칩에 들어가는 트랜지스터 수와 성능이 약 2년마다 2배씩 늘었습니다. 이것이 기사의 핵심 내용이고 이런 현상은 미래에도 유효하다는 예측을 다룬 기사였죠. 이렇게 예측한 그가 반도체 기업 인텔의 공동 창립자 고든 무어(Gordon Moore)입니다.


반도체 공학을 공부하면 가장 먼저 배우는 '무어의 법칙'이 있습니다. 무어의 법칙은 '칩에 집적할 수 있는 트랜지스터 수가 18개월마다 2배씩 증가할 것'이라는 이론으로 널리 알려졌죠. 이후 이는 인텔 반도체 전략의 핵심을 이루고 최근까지 놀라울 정도로 적중했습니다. 어쩌면 전자산업의 발전은 사소한 원고가 동력이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무어의 법칙이 세계 전자산업의 묵시적 목표가 됐으니까요.


그런데 무어의 법칙은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법칙처럼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한 결과 만들어진 법칙과 다릅니다. 무어의 법칙은 한 기업에서 제품개발 목표로 정했던 것이 우연하게도 과학기술ㆍ산업의 확장과 함께 도달하게 된 결과가 반복되면서 마치 정해진 법칙처럼 둔갑한 경우입니다. 이에 반도체 업체는 제품 수요와 별개로 규칙대로 반도체 성능을 올리고 다른 모든 산업은 새로운 반도체 성능에 맞춰 적정한 제품을 생산한 셈이 됐죠. 물론 증가하는 데이터와 처리속도라는 시대적 요구를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그만큼 성능이 좋아지고 크기가 작아져 사람들은 이제 손안에 컴퓨터를 쥐게 되었으니까요. 심지어 20여년 전 체스 챔피언을 이긴 기계와 프로그램은 이제 스마트폰 앱으로 변신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해 일상의 일을 처리합니다. 은행에서 줄을 설 이유가 없고 서류를 떼기 위해 관공서에 갈 일도 줄었습니다. 사물인터넷이 등장하며 원격으로 전자제품을 조정하죠. 그만큼 현대인의 생활이 과거에 비해 풍요로워진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개운하지 않은 느낌이 남아 있습니다. 처음에는 기계가 사람 말을 이해해 원하는 정보를 바로 주고 때맞춰 청소기를 돌리고 TV와 에어컨을 집밖에서 켜고 끄는 게 신기하고 편리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더 편함을 찾게 되더군요. 덕분에 외출할 때 집안과 자신을 스스로 한 번 둘러보던 습관은 사라졌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사용하면서 몇 번이나 오간 길조차 생소해 이제 길 안내 없이는 찾아갈 수 없습니다. 하찮은 일은 기계에 맡기며 스스로 더 나은 일에 집중할 줄 알았는데 어느날 보니 기계가 시키는 일을 하고 있거나 사고의 영역이 줄더군요.

내 삶에서 주체적으로 하던 일들을 기계에 뺏겨버린 건 아닌지 혼란스럽습니다. 풍족해진 만큼 시간과 여유가 생겨야 하는데 우리 삶은 이상하리만큼 더 바빠졌습니다.


AI가 등장하면서 오히려 뒤처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인간이 발전을 따라잡지 못하는 능력의 부재 때문이라 여길 수도 있지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 생활이 인위적 법칙의 프레임에 매몰된 것은 아닌가 하는 겁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첨단 전자제품의 성능과 사용 습관이 과연 적절한가 하는 의문도 생깁니다. 짧게는 1년, 길어도 2년마다 시장의 요구에 부합한 제품이 출시된다지만 진정 우리의 자발적 요구에 의한 공급인가 하는 겁니다. 어쩌면 거꾸로 우리가 그 속도에 맞춰진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김병민의 사이언스 빌리지] 첨단중독시대, 포스트휴먼으로 산다는 것


신기하게도 멀쩡하게 사용하던 휴대전화는 신제품 출시에 맞춰 급격하게 성능이 떨어지고 우리가 길들여진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는 구형으로 전락합니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신형을 구매하기 위해 대리점으로 가게 되지요. 고장 나 바꾸는 게 아니라 만족스럽지 못해 바꾸는 거죠. 집안에는 아직도 멀쩡한 전자제품들이 쌓여 있습니다.


분명한 건 성장에 갇혀 우리가 과잉소비의 선을 넘고 있다는 겁니다. 최근 기후변화로 줄이고 아껴야 한다는 구호는 들리지만 미래를 향한 전자산업 발전과 전자기기 사용은 브레이크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달리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전자제품 하나를 생산하는 데 탄소가 배출되는 것은 물론이고 엄청난 화학제품이 사용된다는 불편한 사실을 애써 묵인하고 있습니다.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10년 전부터 무어의 법칙에 제동이 걸렸습니다. 결국 2016년 반도체 업계는 기술적 한계로 무어의 법칙을 포기했죠. 회로선폭이 좁아지며 양자역학에서 이야기하는 '터널링 현상'으로 전자이동에 문제가 생긴다고 합니다. 무어의 법칙은 끝났습니다. 향후 새로운 도전으로 발전하겠지만 이 지점에서 우리도 속도를 줄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줄어든 속도는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바깥 풍경을 정확히 볼 수 있게 만드니까요.


그렇다고 무조건 전자제품을 줄이고 쓰지 말자는 게 아닙니다. 적절한 소비는 경제의 동력이지요. 다만 우리 손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탄소를 배출했을까 생각해보고 이로 인한 기후변화로 녹아내리는 얼음 때문에 터전을 잃은 채 살려 안간힘 쓰는 북극곰을 한 번쯤 떠올려 보자는 겁니다. 새로운 편리함을 원하는 우리의 요구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는 거죠.

분명 미래는 우리에게 '포스트 휴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이 인류만은 아닐 겁니다. 미래를 설명할 담론이 과학기술만 있는 것도 아닐 겁니다. 무작정 달리던 차에서 잠시 내려 진정한 포스트 휴먼이 무엇인지 생각할 지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병민 과학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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