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숨기고 국기까지 위장
캐나다인 "정체성 도용 불쾌"
해외여행 중 자신이 미국인임을 숨기고 캐나다인으로 신분을 위장하는 미국 여행객들이 늘고 있다. 반미 정서를 피하고 보다 우호적인 대우를 받기 위한 일종의 생존 전략인데, 이에 대한 캐나다 현지의 반감도 만만치 않다.
18일(현지시간) CNN은 이 같은 현상을 '플래그 재킹(flag jacking)'이라고 소개하며, 일부 미국인들이 가방이나 배낭에 캐나다 국기 문양을 부착하거나, 자신을 온타리오 출신이라고 소개하는 사례가 해외에서 자주 포착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같은 행태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과 함께 다시 두드러지고 있다. 그의 대외 정책과 강경한 발언들이 세계 각지에서 반미 여론을 자극하면서, 미국 국적을 노출하는 것 자체가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 것이다.
미국 뉴욕에 거주하는 30대 여성 A씨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 겪은 경험을 언급했다. 휴가지에서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던 중, 무심코 미국팀을 응원하다 인근 관광객과 언쟁이 벌어졌고, 그때부터 가방에 캐나다 국기 패치를 달고 다니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식 억양을 눈치챈 다른 미국인 여행객에게 정체가 들통 나면서 어색한 상황을 겪어야 했다.
비슷한 경험을 한 미시간주 출신 B씨는 유럽 여행 중 현지 식당에서 자신을 캐나다인이라 소개했다가, 출신지를 세세히 물어온 점원의 질문에 곤혹을 치렀다. 점원이 캐나다 온타리오 지역에 대한 지식이 많았던 탓이다. B씨는 "그때 이후로는 그냥 조용히 다닌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현상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미국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잇달아 침공하면서 해외에서의 비난 여론이 거셌던 시기에도 미국 여행객들 사이에서 '캐나다인 코스프레'가 일종의 생존 전략처럼 퍼진 바 있다.
당시 인기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에서도 주인공이 유럽 여행을 떠나며 캐나다 국기를 가방에 다는 장면이 방영돼 화제를 모았다. 약 20년이 지난 지금, 반미 분위기가 다시 고조되면서 플래그 재킹이 부활한 것이다.
캐나다인들 "우리 국기는 변장 도구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태를 바라보는 캐나다인들의 시선은 싸늘하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를 상대로 무역 보복을 단행하고, 캐나다 총리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전력까지 더해져 반감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캐나다의 문화평론가 토드 매핀은 자신의 SNS에 올린 영상에서 "우리는 미국인의 대체 여권이 아니다", "캐나다는 국가이지, 미국인이 잠시 걸치는 의상이 아니다"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미국 상황이 불편하다고 해서 남의 나라 정체성을 빌리는 건 도의적으로도 옳지 않다"며, "진정한 해결책은 자기 나라 문제를 직시하고 바로잡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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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핀의 영상은 게시 후 3개월도 되지 않아 조회 수 10만회를 넘기며 온라인 상에서 화제를 모았다.
김은하 기자 galaxy65657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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