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유예기간 거친 뒤 시행…사용자 개념, 쟁의 범위 확대
최근 반도체 관련 회사 A 사는 '원청의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도록 사업 구조를 재설계해 달라'고 한 대형 로펌에 의뢰했다. 이 회사는 일부 생산공정을 도급 방식으로 운영하는데, 하청 노조가 파견 관계를 주장하며 원청에 직접 고용을 요구할 경우 막대한 인건비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에 미리 자문을 받기로 한 것.
이른바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제2, 3조 개정안)'이 지난 8월 24일 통과됐다. 기업들은 법 통과 전부터 대비를 하긴 했지만, 쟁점이 정리되려면 결국 대법원 판단까지 구할 수밖에 없어 현장에서는 아직도 혼란이다. 특히 반도체, 건설, 물류 업계를 중심으로 구체적인 대응 시스템 구축하기 위한 로펌 자문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이번에 통과한 노란봉투법의 가장 큰 특징은 '사용자' 개념을 대폭 확대한 것이다. 바뀐 법 제2조 제2호는 사용자를 '근로 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조건을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자'로 규정했다. 하청·도급업체 소속 근로자에 대해서도 원청이 단체교섭 의무를 지게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김상민(46·사법연수원 37기)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실질적 지배력이 인정돼 교섭을 진행하는 단계에서 노사가 교섭 단위에 대한 이해가 달라 교섭 거부로 인한 부당노동행위 등의 분쟁 발생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종전 판례들을 참고해 기준을 설정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정당한 '노동쟁의'의 범위를 확대(바뀐 법 제2조 제5호)한 것도 기업들의 경영 위험을 키우는 요소다. 개정된 법에서는 '근로자의 지위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사업 경영상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 '사용자의 명백한 단체협약 위반으로 인하여 발생한 분쟁 상태'를 쟁의의 대상으로 포함시켰다. 합병, 분할 등 사업 재편이나 조직·부서의 조정 및 통폐합 등 조직 재편에 관한 경영상의 결정도 쟁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는 '정리 해고는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99도4893), 구조 조정이나 합병 등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경영 주체의 경영상 조치는 원칙적으로 쟁의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2003도687) 등과 상충한다. 이광선(51·35기)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모든 경영상의 결정이 쟁의의 대상에 포함되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 조정 혹은 사업장 이전 등이 근로조건과 관련된 사안으로 볼 가능성도 있다"며 "정리 해고의 경우 기존에는 근로기준법의 요건을 따르면 됐지만, 만약 노동쟁의 대상이 된다면 기업에서는 파업 등 노동자들의 쟁의 행위를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생겨 해고의 유연성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법 시행 이후 최소 2~3년간 노사 간 소송이 크게 증할 것으로 전망한다. 한 대형 로펌 변호사는 "실질적 지배력 여부가 불분명한 기업들은 섣불리 교섭에 응하기보다 법원의 판단을 구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권영환(46·변호사시험 3회) 법무법인 지평 변호사는 "현재로서는 다양한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질적 지배력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어서, 사전 예측이 어렵고 법원 판단이 필요할 수 있다"면서도 "형사처벌 및 행정제재 대상인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에 유예기간 6개월 동안 미리 교섭 전략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노란봉투법 통과의 파장은 즉각 나타났다. 법 통과 하루 만인 8월 25일, 현대제철 하청 노조는 원청을 상대로 한 집단 고소를 예고했다. 경영계는 "사용자와 쟁의 대상의 범위가 불분명해 위헌 소지가 크다"며 헌법소원 제기 가능성을 거론했다. 헥터 비자레알 한국GM 사장 또한 "본사에서 한국 사업장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질 수 있다"며 국내 사업 철수내지 투자 위축 가능성을 시사했다.
노란봉투법이라는 별칭은 과거 쌍용차 파업 노동자들이 거액의 손해배상 판결을 받자, 시민들이 이를 돕기 위해 노란 봉투에 성금을 보낸 것에서 유래했다. 노란봉투법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거쳐 내년 3월경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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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하얀 법률신문 기자
※이 기사는 법률신문에서 제공받은 콘텐츠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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