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이 좋다'는 말이 있다. 과거에 세금을 거두거나 물자를 옮기기 위해 교통이 편리한 지점에 행정 거점이 세워졌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여 장사가 잘되는 곳을 가리켰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표현은 곧 상권의 핵심 위치, 장사가 잘되는 자리를 뜻하는 말로 굳어졌다. 좋은 입지는 곧 좋은 장사를 의미했다.
지금은 목 좋은 자리가 성공적인 상권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올해 2분기 서울 주요 상권의 평균 공실률은 15.2%로 집계됐다. 전 분기보다는 0.1% 상승했지만,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는 0.8% 하락했다. 크게 악화하지는 않았지만,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상권별로는 명암이 분명했다. 신사동 가로수길은 공실률이 43.9%로 가장 높았고, 청담동은 명품 브랜드 신규 입점 효과로 13.4%까지 낮아졌다. 한때 텅 비었던 명동은 외국인 관광객 회복세로 4.9%까지 줄었고, 성수는 3.4%로 가장 안정적인 상권으로 자리 잡았다.
이처럼 최근 상권별 공실률 추이는 단순히 입지나 유동 인구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같은 강남권에서도 청담동은 활기를 되찾았지만, 가로수길은 여전히 절반 가까운 점포가 비어 있다. 성수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공업지역의 이미지가 강했다. 그런데 지금은 카페·편집숍·브랜드 협업 공간이 모이면서 가장 낮은 공실률을 기록하고 있다. 더 이상 입지가 상권의 성패를 결정하는 절대 요인이 아니라는 얘기다.
입지보다는 콘텐츠가 더 중요해졌다. 소비 트렌드의 변화도 콘텐츠의 중요도를 높이고 있다. 과거에는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어떤 경험을 하느냐가 더 큰 가치가 된다. MZ세대는 단순 구매보다 체험과 공유를 중시한다. SNS에 올릴 만한 공간, 브랜드와 소통할 수 있는 이벤트, 한정 기간만 즐길 수 있는 팝업을 찾아 움직인다. 상권의 집객력은 발길이 아니라 머무름과 공유, 즉 콘텐츠의 힘으로 좌우된다.
성수동은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단순한 카페 거리를 넘어 글로벌 브랜드가 앞다투어 팝업스토어를 열며 임대료가 급등했다. 일반 음식점 임대료는 평당 40만 원대에 머물지만, 체험형 콘텐츠를 담은 매장은 평당 100만 원 이상이다. 강남역 인근도 마찬가지다. 같은 입지임에도 불구하고 뷰티·헬스케어 콘텐츠가 모여 있는 골목은 일반 음식점 밀집 지역보다 임대료가 30~40% 높게 형성된다.
특히 콘텐츠 시대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는 '팝업스토어'를 꼽을 수 있다. 팝업은 단순 매장이 아니라 하나의 이벤트이자 경험이다. 한정 기간 운영되는 희소성과 SNS 확산력 덕분에 높은 임대료를 지불하면서도 흥행에 성공한다. 성수, 한남, 압구정 갤러리아 일대는 유명 브랜드 팝업이 열릴 때마다 인파가 몰리고, 주변 상권의 임대료 기대치까지 끌어올린다.
건물주와 투자자의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 단기 임대료 수익보다 콘텐츠 집적 효과를 통한 장기적 가치 상승이 더 중요해졌다. 금융기관과 투자자들은 이미 콘텐츠 리스크를 세심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리츠(REITs)나 상업용 부동산 펀드도 단순 상권 입지가 아니라 브랜드 협업 가능성과 콘텐츠 지속성을 주요 평가 요소로 삼고 있다. 공간을 단순히 빌려주는 시대는 끝나고, 공간을 콘텐츠화 해 가치를 창출하는 능력이 투자 성과를 좌우하게 된 것이다.
앞으로 상권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어디에 위치했는지'보다 '무엇을 담고 있는가'다. 뜨는 상권을 좇는 것보다 뜨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담아낼 수 있는 생태계와 협업 구조를 이해하는 자가 시장의 승자가 될 것이다. 입지가 다소 불리하더라도 차별화된 콘텐츠와 체험 전략을 더한다면, 그곳은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바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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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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