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본이 들어가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겠냐마는 휴가차 호주 시드니를 방문한 기자는 조금 과장해서 여기가 중국인지, 호주인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할 정도로 중국의 강한 침투력을 느꼈다. 지난주 이재명 대통령이 파견한 특사단도 호주 방문에서 비슷한 것을 느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대표적인 차량공유 플랫폼 디디추싱(디디)은 세계 6위 국토 면적을 가진 호주의 취약한 대중교통 시스템에 침투해 성공한 기업으로 통한다. 시드니에서 택시를 이용하려면 중국의 디디 애플리케이션(앱)이 있어야 한다. 시장에 일찌감치 진출한 미국의 우버가 점유율 측면에서는 앞서나가고 있지만, 디디는 파격적인 할인 혜택과 플랫폼 수수료 인하를 통해 우버의 1등 지위를 위협하고 있다. 시드니 여행 중 우버, 디디 각각의 플랫폼에 연결된 2대의 휴대폰을 차량에 부착해 먼저 들어온 콜을 받는 기사들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중국은 제조업과 인프라가 약한 호주 경제 곳곳에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워 침투했다. 호주에 사는 아시아계 이민자 가운데 중국계가 가장 많다는 점도 중국 기업들이 점유율을 빠르게 확대할 수 있는 원동력이다. 허허벌판이었던 땅에 갑자기 상업용 오피스 빌딩이 들어서고, 중국어 간판이 가득한 미니 차이나타운이 곳곳에 생기는 것은 물론, 집값이 급등하는 지역이 확대되는 이 모든 현상 뒤엔 중국 자본이 있다.
호주는 중국 자본의 영향력을 경계하고 있다. 최근 호주 정부는 중요 광물 분야에서 일부 중국계 투자를 차단했고 재생에너지와 핵심 인프라 분야에 대한 보안 심사도 강화했다. 외국인 투자 사전심사를 강화한 것은 물론, 중국 기업의 호주기업 인수합병(M&A) 승인도 더 까다롭게 했다. 지난달 리창 중국 총리가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의 방중을 계기로 진행한 기업인 간담회에서 “중국 기업들의 호주 시장 진출과 투자 심사에서 겪는 문제가 해결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것도 호주의 중국 경계감을 완화해 달라는 메시지가 깔려 있다.
한국은 이 틈을 잘 파고들 수 있을까. 현재 빠른 속도로 호주 시장 침투를 시도 중인 한국 기업, 현대로템이 기회 앞에 서 있다. 현대로템은 중국 철도기업 CRRC는 물론, 프랑스 알스톰, 독일 지멘스 등과 경쟁하며 시드니 중심에서 서부 지역을 잇는 전동차 신설 노선 입찰에 참여 중인데 현재 7부능선은 넘은 상태다.
성공하면 한국의 기술력과 부품, 운용경험이 들어간 전동차로 시드니 도심을 가로지르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된다. 현대로템은 2016년 뉴사우스웨일스(NSW)주 시드니와 인근 교외 지역 뉴캐슬을 잇는 광역철도 노선에 들어갈 2층 전동차 512량을 수주한 이후 2023년에는 브리즈번 올림픽을 준비하는 퀸즐랜드주와도 광역 철도노선에 들어갈 전동차 공급 계약을 체결하며 호주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광물 수요의 95% 이상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은 그동안 지구 반대편에 있는 호주를 천연가스, 철광석 등 자원을 수입할 수 있는 나라로 중요시했지만 적극적인 투자는 하지 못했다. 일찌감치 기업 M&A, 부동산 매입, 인프라 투자 등을 통해 호주 시장에 발을 들여놓은 중국과는 다른 접근이다. 코트라(KOTRA)는 호주 전체 인구의 30% 이상이 살고 경제 규모가 가장 큰 지역인 뉴사우스웨일스주에서 한국이 상품 수출 시장 5위에 올라 있지만, 지난 5년간 외국인직접투자(FDI) 규모는 10위로 밀려나 있다고 보고서를 통해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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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대통령 특사단의 호주 방문을 계기로 양국 간 활발한 고위급 교류를 통한 직접적인 협력 강화가 필요한 때다. 중국 자본의 피로도가 높아진 지금이 호주에 러브콜을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박선미 기획취재부장 psm82@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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