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회화·서화 수입하고 감상 공간 모방
북송도 고려 영향 받아…'고려도경' 등 증명
"직접 교류하며 특별한 관계를 맺었을 듯"
북송 황제 휘종은 '풍류천자(風流天子)'라고 불렸다. 그만큼 미적 감수성과 안목이 탁월하고, 시·서·화에 뛰어난 삼절(三絶)이었다. 희귀한 동식물과 상서로운 상징물을 그려 화첩에 남기곤 했다.
대표적 작품으로는 '서학도(瑞鶴圖)'가 꼽힌다. 대성부(大晟府)라는 관청에 명해 작곡한 대성락(大晟樂)이 연주되자, 그에 감응해 학들이 몰려드는 장면을 그렸다. 학은 도교의 신선들이 국가 지도자에게 보내는 일종의 사신을 가리킨다. 좋은 정치에 깃드는 상서로운 기운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서학도'를 비롯해 '오색앵무도', '상룡석도' 등은 '선화예람집'이라는 대형 시·서·화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휘종이 직접 제작하거나 궁중 화원에서 대리해 제작했다고 추정된다. 한·당나라의 좌우 대칭적 화면 구성에 북송 궁정 화풍의 섬세한 묘사를 가미해 장식성과 사실성을 모두 구현했다고 평가된다. 휘종은 선화전(宣和殿)이라는 사적 공간에서 이를 고관들과 함께 감상하고 하사했다. 북송 말기에는 화원 제도를 강화해 화풍 개혁을 시도하기도 했다.
지난 26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만난 이타쿠라 마사아키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는 이런 변화가 한국과 일본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일본에서 한국과 중국 회화사 전문 연구자로 알려진 그는 "고려 예종은 휘종에게 직접 서화와 희귀 물품을 하사받았고, 사절단은 선화전에서 휘종의 작품을 감상했다"며 "이를 본떠 회화와 서화를 수입하고 감상 공간을 모방했다"고 말했다.
휘종의 화풍은 고려의 산수화 중심 회화 감상 문화와 실물 교류를 통해 적극적으로 수용됐다. 특히 송대의 화풍과 시화일치(詩?一致·시와 그림이 하나가 되는 예술관)의 회화 형식은 고려를 거쳐 일본에까지 전해졌다.
일본은 휘종 시기 북송과 직접 교류한 적이 없다. 하지만 무로마치 시대에 휘종의 작품을 복원해 재구성한 남송 회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동경이 형성됐다. 이타쿠라 교수는 지난 28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 왕실 문화와 미술'에서 "특히 아시카가 요시미쓰·요시마사의 '동산어물(東山御物)' 컬렉션이 휘종 서화에 대한 이상을 반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런 흐름을 단순히 전파로 규정하지 않았다. 북송 또한 고려와 교류하며 다양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북송 사신 서긍의 '선화봉사고려도경'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고려청자를 두고 "도기의 푸른 빛을 고려인은 비색이라고 하는데, 근래 들어 제작 기술이 정교해져 빛깔이 더욱 좋아졌다"며 극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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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도 다르지 않았다. 이타쿠라 교수는 "휘종이 고려 화가의 그림을 보고 화원 소속이던 왕하훈 등에게 배우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며 "직접적으로 교류하며 특별한 관계를 맺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휘종의 예술 세계는 동아시아 전역에서 문화적 이상으로 자리매김했으나 수용 양상은 각 나라의 정치·문화적 맥락에 따라 달랐다"며 "고려는 실질적 교류, 일본은 후대의 회고적 동경으로 받아들였다고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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