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출범 후 첫 한미 통상 회담
미, 중국산 철강 우회수출 등 제기
미국을 방문 중인 정인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14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4월 2일부터 시행할 예정인 '상호관세'와 관련해 "한국에 대한 관세 면제 또는 최소한 주요국들과 비교해 비차별적 대우를 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정 본부장은 이날 워싱턴DC 주미대사관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방미 기간 중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와 면담했다고 전하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관세뿐 아니라 미 측이 문제 제기하는 우리의 비관세 조치도 상당 수준으로 해소되거나 관리되고 있으며, 양국 간 교역이 양적·질적으로 확대돼 왔음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고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후 양국 통상당국 수장이 직접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 본부장과 그리어 대표 면담은 이날 오전 약 1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 의회 상·하원 합동회의 연설에서 '한국은 미국 관세의 4배를 부과한다'고 언급한 것과 관련해 정 본부장은 "양국 간 인식 차이를 바로잡기 위해 사실관계를 정확히 설명하고, 이를 근거로 상호관세가 고려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미 측도 한미 FTA에 따라 양측 관세는 0%에 가까운 수준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며 "포괄적 경제협력 틀로서의 한미 FTA의 유용성에 공감하며 관세 조치 등에 대한 실무 협의를 지속해 합리적이고 상호 호혜적인 진전 방안을 모색하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4배 관세' 발언 배경에 대해 정부 고위 당국자는 "약 3주 전부터 인터넷에서 한국 평균 관세율이 12%, 미국은 3%라는 자료가 돌기 시작했고 이를 즉각 시정해달라고 요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 자료를 근거로 발언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12% 관세율은 특정 국가가 아닌 전 세계 무역 대상국을 상대로 한 평균 관세율이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오해해 한국이 미국보다 4배 높은 관세를 부과한다고 인식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 본부장은 특히 12일부터 부과된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25% 관세와 관련해 "한국 철강 관세 면제 필요성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산 철강이 미국 산업 안보에 위협이 되지 않으며 오히려 미국 내 부족한 품목을 공급해 공급망 안정화와 하방 산업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설명했다"고 했다. 또한 "미국 측이 우려하는 교역 불균형 문제에 대해 한국의 대미 투자 확대와 에너지 수입 증가를 통해 점진적으로 완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고 밝혔다.
정 본부장은 "이번 면담은 미국의 신행정부 출범 후 양국 통상당국 간 첫 상견례였다"며 "앞으로 신뢰 관계를 쌓을 유의미한 단초가 될 것으로 평가하며, 미국 통상정책에 대한 우리 입장을 충분히 설명하고 앞으로 이어질 양자 협의를 준비할 기회였다"고 말했다.
미국 측은 이번 회동에서 한국의 위생·검역(SPS) 규정, 디지털 통상 장벽, 무역수지 불균형, 철강 등 중국산 제품의 한국 경유 우회 수출 문제 등을 제기했으며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한국 측은 미국의 우려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전달했으며 특히 중국산 철강이 한국을 경유해 미국으로 우회 수출된다는 우려는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명확히 밝혔다고 정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SPS 규정과 관련해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한국이 개선할 부분이 많다는 의견이 나왔으며, 면담 시간이 제한적이어서 농업 분야 협의는 깊이 논의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무역수지 적자 완화는 미국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사안이고 이날 협의에서 한국이 해결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할지 제시했다고 정부 당국자는 설명했다. 또한 "이번 협의가 1차 논의였다면 다음 협의에서는 더욱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또 "(오늘 만남에서) 그리어 대표가 한미 FTA의 가치와 중요성을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고 느꼈다"며 "앞으로 4월 2일까지 20여일 남은 기간 기회가 닿는 대로 실무자들이 워싱턴을 방문해 우리 입장을 지속해서 설명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정부 당국자는 "그리어 대표는 결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모든 것을 결정하기 때문에 각국이 의미 있는 제안이나 대책을 갖고 오면 대통령에게 잘 보고할 수 있다는 취지로 얘기했다"며 "우리가 해야 할 숙제가 상당히 많아진 것"이라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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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본부장은 이번 방미 기간 그리어 대표 외에도 한국계 첫 연방 상원의원인 앤디 김(민주·뉴저지) 의원, 허드슨 연구소 및 미국 로펌 전문가들과 면담했으며, 미국에 진출한 한국 철강업계 관계자들과도 간담회를 가졌다.
최서윤 기자 sychoi@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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