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릴레마에 갇힌 데이터센터(1)
업계 전문가 이야기 들어보니…
인근 전자파, 기준치 1% 이하
디지털 시대 필수 인프라인 데이터센터는 전력 수급 외에 인공지능(AI) 대전환과 주민 반대 등 3가지 문제에 봉착하며 일명 ‘트릴레마’에 빠졌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데이터센터의 역할은 커졌는데 수도권 내 전력 공급은 어려워지고 ‘유해 시설’로 인식한 주민들의 반대 목소리는 높아진 것이다.
"서울에서 전기를 가장 많이 쓰는 기관은 지하철을 운영하는 교통공사입니다. 전기선이 지상에 있는 구간도 있죠. 하지만 전자파로 문제가 되거나 인근 지역 주민들이 전력난이나 전파장애를 겪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과거 20년 동안 한국전기안전공사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에스원 인재개발원 교수를 맡고 있는 한남현 한국건축전기설비기술사회장의 말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이끄는 데이터센터 설립을 놓고 지역 곳곳에서 사업자와 주민들 간 갈등을 빚는 핵심 문제는 전기다. 전기가 있어야 데이터센터를 운영할 수 있지만 정작 주민들은 이를 뒷받침하는 초고압선과 변전소로 인해 전자파가 발생할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의 견해와 실제 측정 결과는 이 같은 주민들의 우려가 지나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한남현 회장은 "63빌딩, 포스코타워, 롯데타워 같은 대형 건물들도 엄청난 양의 전기를 사용하고 낮과 밤의 변동성도 크지만 주변 지역에 해를 입히지 않는다"며 "오히려 전기를 일정하게 사용하는 데이터센터의 리스크가 적다"고 했다.
서울 용산에 있는 아이파크몰에는 154㎸의 초고압선이 들어가 있다. 하지만 이를 아는 서울 시민은 많지 않다. 수원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도 154㎸의 초고압선을 사용하지만 지역 주민들은 전자파 피해를 호소하지 않는다. 대기업들이 입주해 있는 서울 시내 주요 빌딩, 대형 백화점 건물은 22.9㎸의 전기를 사용하고 있다.
경기 고양시는 데이터센터 설립을 놓고 사업자와 주민들 간의 갈등이 일어나는 대표적인 지자체다. 주식회사 신영에스앤디는 고양시 식사동과 문봉동에 데이터센터 설립을 위해 각각 별도 법인(PFV)을 만들어 추진하고 있다. 현재 두 곳 모두 주민 반대에 부딪혀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정우림 신영에스앤디 전무는 아시아경제와의 통화에서 "강서구 화곡동의 새마을금고 IT센터와 서울 목동에 있는 KT 데이터센터도 모두 아파트 단지 인근에 있다"면서 "인체에 유해한 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전기 확보만 된다면 건축이 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데이터센터에 필요한 전력을 확보하기 위해 전용선을 설치하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 내 정전 우려도 없다고 설명했다.
정 전무는 지난 5일 식사동 주민들을 동반해 현장검증도 실시했다고 밝혔다. 경기도에 위치한 한 초대형 데이터센터 인근에 직접 가서 전자파를 측정하는 자리였다. 그는 "정부 연구 용역을 다수 수행한 경험이 있는 ‘미래전파공학연구소’가 근처에서 전자파를 재봤더니 0.95~2.11밀리가우스(mG)가 나왔다"고 했다. 국내 전자파 안전기준은 833mG인데 이에 1%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다만 사업자가 주민의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앞서 용인 죽전 퍼시픽센터 데이터센터와 LG유플러스 평촌2센터는 데이터센터와 연결되는 154㎸의 초고압선로를 땅속 더 깊이 매설하거나 차폐판을 설치해 전자파 우려를 완화하고 주민 합의를 이끌었다.
전문가들은 수도권 내 전력 공급 차질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한다. 한 회장은 "과거 밀양 송전탑 사건 이후로 송전 인프라 건설이 어려워지면서 수도권 전력 공급이 차질을 빚고 있다"며 "수도권 전기 수요를 줄이기 위해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게 진짜 문제"라고 했다.
![[AI 시대 電力이 국력]③"전기는 죄가 없다"…수급 불균형이 더 큰 문제](https://cphoto.asiae.co.kr/listimglink/1/2025031108191062241_1741648778.jpg)
정부는 데이터센터의 비수도권 이전을 유도하기 위해 2023년 3월 전기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기존에는 원칙적으로 발전사업자, 전기판매사업자는 전기 공급을 거부할 수 없었다. 반면 개정 전기사업법에서는 5메가와트(㎿) 이상 대량으로 전기를 사용할 경우 전력 계통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하면 한전이 전기 공급을 거부할 수 있도록 했다. 또 2024년 6월 시행된 분산에너지활성화특별법을 통해 10㎿ 이상 전력을 공급할 경우 전력계통영향평가를 실시하도록 했다. 사업자들 사이에서는 전력계통영향평가 기준이 까다롭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전력 공급 외에 문제는 또 있다. 데이터센터 사업자와 이용자들은 수도권 외 지역으로 데이터센터를 이전할 경우 송수신 지연이 발생하고 유지·관리 인력을 구하기도 힘들다고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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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준화 한국데이터센터에너지효율협회 사무국장은 "수도권 데이터센터는 수요 기업이 많아 2년 만에 공간 임대가 완료되는 반면 비수도권은 5년 넘게 ‘미분양’되기도 한다"고 했다. 이어 "수천억원이 드는 데이터센터 설립 사업 비용을 회수해야 하는 입장에선 수도권 설립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데이터센터 송전선로는 법적 허용 기준에 맞게 매립하고 소음을 줄이는 방음 설비를 갖추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보경 기자 bkly477@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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