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정부가 부유한 외국인 등을 대상으로 한 고정세를 2배로 인상했다. 유럽 다른 지역에서 높은 세금을 피해 이탈리아로 거주지를 옮긴 부유층에 타격이 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이탈리아 정부측은 인상된 고정세가 고액 자산가들에게는 여전히 '흥미로운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평가했다.
조르자 멜로니 내각은 7일(현지시간) 내각회의를 열고 이탈리아 신규 거주자의 연간 해외 소득에 대한 고정세를 20만유로(약 3억원)로 인상하는 세법 개정안을 승인했다. 기존 연간 10만유로에서 2배 올린 것이다.
해외 부유층을 자국으로 유인하기 위해 2017년 도입된 고정세는 신규 거주자의 해외 소득이 얼마인지와 상관없이 매년 일정한 금액을 세금으로 내도록 한 제도다. 이탈리아에 새롭게 거주하는 외국인 또는 해외에서 9년 이상 거주하다가 귀국한 이탈리아인에게 15년 간 적용된다. 비공식적으로는 '억만장자' 세금 또는 '축구선수 제도' 등으로 불리고 있다.
이는 포르투갈의 축구스타인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이탈리아 유벤투스로 이적하는 계기가 되는 등 부유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부동산 가격 및 생활비 급등 등의 원인이 되면서 밀라노 등 주요 도시에 거주하는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논란이 잇따랐다. 부유층이 몰린 밀라노에서는 지난 5년간 부동산 가격이 무려 43% 상승한 것으로 파악된다.
국제사회에서도 이탈리아가 부유층의 조세 회피처가 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최소 2730명의 억만장자가 이 제도의 혜택을 보기 위해 이탈리아로 거주지를 옮긴 것으로 추산된다. 회계법인인 무어 킹스턴 스미스의 팀 스토볼드 파트너는 "이탈리아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수는 이제 확실히 줄어들 것"이라고 전했다.
내각회의 직후 기자회견에 참석한 잔카를로 조르제티 경제재정부 장관은 "억만장자를 위한 고정세"라고 이 제도를 설명했다. 2017년 도입 이후 수혜자는 1186명이라고 확인했다. 다만 "(이번 고정세 인상에도) 여전히 고액 자산가들에게는 흥미로운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번 조치가 새롭게 거주지를 옮기는 이들에 한해 적용되며 이미 이탈리아로 이주한 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이탈리아로서는 당초 고정세 도입을 통해 기대했던 부유층의 경제 활성화 및 투자 기여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자, 세액 인상에 나선 것으로 해석된다. 이번 인상을 통해 연간 세수를 늘림으로써 재정적자를 줄이는 효과도 예상된다. 지난해 이탈리아의 재정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7.4%로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GDP의 3% 내라는 유럽연합(EU) 목표를 훨씬 뛰어넘는 수치다.
이번 조치로 얼마나 많은 세수가 확대될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앞서 이탈리아 감사원은 2018년부터 2022년까지 이 제도에 따라 거둬들인 세금이 2억5400만유로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탈리아는 다른 국가들과 세금 감면을 두고 경쟁하고 싶지 않다는 뜻도 명확히 했다. 조르제티 장관은 "그런 경쟁이 시작되면 이탈리아처럼 재정 여력이 매우 제한적인 국가는 필연적으로 패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 횡재세 도입 검토 보도와 관련해서는 추가 세금을 부과할 계획이 없다고 일축했다.
조슬기나 기자 seu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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