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회계기준원 제정 ESG 공시기준
내주 초 회의…4월 말 KSSB 최종 의결
美SEC, 법적 분쟁 이슈에 도입 제동
4월 말 확정 예정인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기준 공개초안에 '가치사슬(스코프3)' 적용 조항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스코프3가 포함 시 이를 제외한 미국 최종안보다 강한 수준의 규제가 될 전망이다. 금융당국이 미국·유럽 등 해외 국가들과의 상호운용을 중요시했던 만큼 최근 미국 내 기후공시 도입 제재 움직임이 국내 정책에도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재계에선 "기업들의 현실을 고려해달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18일 재계에 따르면 한국회계기준원 산하 KSSB(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는 내주 초 회의를 열고 ESG 공시기준(지속가능성 공시기준) 기초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다. 기초안은 4월 말 의결을 거쳐 최종 확정을 통해 공개초안으로 정립된다. 공개초안은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을 거쳐 최종안 형태로 6월 발표될 전망이다.
금융위는 그동안 기업 자율로 공개됐던 ESG 사안을 국내 공시기준에 맞춰 비교할 수 있도록 관련 기준을 준비해왔다. 2026년부터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들에 시범 적용할 것으로 관측된다. 사회(S)·지배구조(G) 부문보다 세계적 공감대가 형성된 기후(E)공시부터 우선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현재로서는 ESG 공시기준 기초안에는 협력사 탄소배출량이 담긴 스코프3 공시 내용이 포함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3월까지만 해도 스코프3 포함이 유력하게 검토됐으나, 이후 산업계에서 우려 목소리가 커지면서 위원회 내부에서도 일부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스코프3 공시는 온실가스 직·간접 배출량(스코프 1·2)뿐만 아니라 가치사슬(스코프3)까지 대상을 확대해 공시하는 것이다. 스코프3는 공급망부터 협력사, 운송, 제품 사용, 폐기까지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을 포함한다. 기업들은 기후 관련 위험과 기회가 전 가치사슬에 미치는 영향도 공시해야 한다. 스코프3의 경우 시행 후 3년 유예 단서가 달렸으나 재계에선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는 2026년 1월부터 적용될 예정이었던 미국의 채택안보다 강한 규제 수준이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지난 3월 채택한 '기후공시 규칙' 최종안에서 스코프3는 제외됐다. 2022년 초안에는 스코프3가 포함됐으나 비상장 계열사까지의 적용이 어렵다는 점, 비용 부담이 크다는 점 등을 호소한 기업과 공화당 의원들의 반발에 SEC측이 한발 물러섰다. 마이크로소프트(MS)를 비롯해 삼성전자 등 글로벌 기업들은 자체적으로 스코프 3 감축 계획을 수립해 추진 중이다.
미국 최종안은 초안 대비 완화된 수준임에도 법적 분쟁에 휘말렸다. 미국 상공회의소, 텍사스경영협회, 25개 공화당 기반 주에서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반대 사유로는 투자자의 재무적 중요성 기준을 훼손, 보고 부담 가중, 연간 및 분기별 보고서의 복잡성 확대 등을 들었다. 이에 SEC는 이달 초 규칙 적용을 일시 유예했다. SEC의 기후공시 도입 의결 자체를 무효화하려는 미 의회 움직임도 빨라졌다. 미국 정치 전문매체 더힐(THE HILL)은 17일(현지시간) 미 상원 에너지 및 천연자원위원회 위원장인 조 맨친 의원이 SEC 기후공시 규정 채택에 반대하는 결의안을 공화당 의원 32명과 공동 발의했다고 보도했다.
2025회계연도부터 스코프3를 포함한 기후공시 의무화를 시행하는 유럽연합(EU) 내에서도 최근 분열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EU의 CSRD(지속가능성공시지침)는 올해 지속가능성 관련 경영정보를 취합해 내년부터 공시해야 한다. EU 역내에 자회사를 보유한 비EU 대기업들에도 2025회계연도부터 ESG 공시를 요구할 방침이다. 지난 2월에는 일명 '공급망실사법'이라 불리는 기업지속가능성실사지침(CSDDD)의 이행 방안이 EU 이사회에서 부결되기도 했다. 독일, 이탈리아 등은 기권했고, 프랑스는 대폭 축소를 요구하며 지지를 철회했다. CSDDD는 기업에 기후 영향을 이해하고 완화하기 위해 실사를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 금융당국 역시 고민이 깊을 것으로 관측된다. 한국은행에서는 지난 3월 금융당국에 ESG 공시기준 마련을 서두를 것을 촉구하는 보고서를 발간한 바 있다. '국내외 기후리스크 공시 기준 도입 동향' 보고서를 작성한 김재윤 한은 지속가능성장실 과장은 "금융당국은 국내기업이 글로벌 기후리스크 공시 규제 강화에 원활히 대응할 수 있도록 글로벌 규제 수준에 부합하는 기후리스크 공시기준을 조속히 마련해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 역시 지난 2월 현장 간담회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 유럽 같은 선진국과 달리 제조업의 비중이 높아 탄소 감축 등이 쉽지 않은 구조적인 특수성이 있다"며 "국내 산업의 특수성이 ESG 공시기준 제정 과정에서 충분히 반영될 필요가 있다"고 공감대를 나타냈다. 그러면서 "미국, EU 등 주요국의 ESG 공시기준과 상호운용이 가능한 글로벌 공시기준을 기반으로 국내 공시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법적 부담이 적은 거래소 공시로 우선 도입하는 방안이라지만 향후 주주들로부터 공시 내용을 근거로 소송을 당할 위험을 피할 순 없다"며 "기업 부담과 막대한 비용 등 미국에서도 문제의식이 커진 만큼 국내서도 규제 도입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한국회계기준원 관계자는 "이달 KSSB의 최종 의결이 남아있는 상황으로 스코프3가 포함되지 않을 가능성도 매우 높다"며 "스코프3가 포함되지 않는다고 가정 시, 나머지 다른 규정에서는 미국이 한국보다 훨씬 더 엄격한 수준을 적용했기 때문에 한국의 ESG 공시기준이 미국보다 강한 규제라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차민영 기자 bloomin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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