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정국서 '주4일제' 논의 시작
심상정은 공약 내걸고, 이재명·이낙연은 긍정적 반응
임금 삭감 등 고려할 부분도
전문가 "유럽선 주35시간제..노동시간, 건강권 등 논의할 시점"
[아시아경제 박현주 기자] "월화수목휴휴휴 가자", "노동자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했다", "월급만 안 줄면 찬성입니다"
대선 정국에서 주4일제 도입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직장인들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이들은 트위터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주4일제를 공약으로 내세운 후보에 호응을 보내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손꼽힐 정도로 길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해 기준 연간 노동시간은 1908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멕시코(2124시간)와 코스타키카(1913시간)에 이어 3위에 올랐다. OECD 회원국의 평균 노동시간은 1687시간이다.
이에 노동자들의 건강권과 휴식할 권리를 보장하자는 이유에서 주4일제에 대한 논의가 등장했다. 올해 9월 총파업을 예고하고 정부와 교섭을 벌였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도 교대근무제 개선 및 주4일제 보장을 촉구한 바 있다.
최근에는 주4일제가 기후 위기의 새로운 해법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지난 5월30일 영국 환경단체 '플랫폼런던'은 '시간을 멈춰라 -노동시간 단축의 환경 혜택(Stop the clock The Environmental Benefits of A Short Working Week report)' 보고서를 통해 영국이 주4일제로 전환할 경우 오는 202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연간 1억2700만t 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영국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21.3%에 해당하는 수치다.
◆심상정 "선진국답게 노동시간 단축해야"…이재명·이낙연도 '긍정적'
주4일제 논의에 물꼬를 틔운 것은 지난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선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대선 출마를 선언한 양승조 충남지사다. 여기에 정의당 대권주자인 심상정 의원이 주4일제와 성평등임금공시제 등을 골자로 하는 신노동법을 제1호 공약으로 내걸면서 주4일제에 대한 논의에 불을 지폈다.
심 의원은 지난 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 주 40시간 합의 이후, 18년 간 노동시간 단축이 멈춘 상태"라며 "유럽연합은 지난 1993년, 이미 30년 전에 주 35시간 지침을 정했고 주4일제 또한 실험을 시작했다. 우리도 선진국답게 노동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고실업 상태에서 일자리를 나누기 위해서도 절실히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여당 대권주자들도 긍정적인 반응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달 22일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 노동시간이 최장이고 주52시간도 사실 길다"며 "주4일 근무 등 장기적으로 노동시간을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전세계적으로) 지금 주40시간도 아니고 주37시간을 하는 곳도 많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라도 노동시간은 추세적으로 줄여가야 된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후보도 지난 7월5일 당 대선 경선 2차 토론회에서 "실제 주4.5일제, 격주로 주4일제를 하는 공기업이 있는데 정년을 2년 연장하고 청년을 고용하는 등 1석2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며 "단계적으로 준비를 갖춰서 도입한다는데 찬성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10명 8명 주4일제 '긍정'…전문가 "MZ세대 호응 높아..현재는 제도를 논의해나가는 과정"
주4일제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도 크다. 지난달 27일 구인구직 플랫폼 '사람인'에 따르면 성인 4155명을 대상으로 주 4일제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83.6%가 긍정적이라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휴식권 보장과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문화 정착'(72.4%·복수응답)과 '충분한 재충전을 통한 업무 효율 향상'(51.7%)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는 △건강 관리(32.1%) △휴일 증가로 인한 내수 진작과 경제 성장(21.2%) △자녀 돌봄(20.1%) 등이 뒤를 이었다.
트위터 등 SNS 상에서도 주4일제에 대한 반응은 뜨겁다. 누리꾼들은 "주4일제를 공약으로 하는 후보를 뽑아야 한다", "주4일제 도입이 시급하다", "주5일제 도입할 때도 나라 망한다는 얘기했는데 결국 안 망했다. 주4일제 가자"는 등의 의견을 냈다. 반면 "주4일제는 실현 가능성과 적합성이 없는, 유권자를 낚기 위한 미끼 공약", "중소기업은 타격이 클 거다" 등 반대 의견도 나왔다.
주4일제가 도입될 경우 근무시간이 줄면서 임금이 삭감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 나온 '사람인' 설문조사에서 주4일제에 부정적이었던 응답자(682명) 중 60.4%(복수응답)는 '임금 삭감 가능성'을 걱정했다. 특히 저임금 근로자의 경우 시간당 임금을 계산하는 경우가 많아 근무시간이 줄면 큰 타격을 받게 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한다.
한편 전문가는 한국 사회가 주4일제에 대해 논의해볼 시점이 됐다고 판단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스페인, 아이슬란드 등에선 이미 주4일제에 대한 실험을 진행 중이고, 유럽 대다수 국가가 주35시간제를 시행하고 있다"며 "앞으로 주요 생산인구가 될 MZ세대가 주4일제에 대한 호응이 높은 만큼 이제 한국 사회가 주4일제와 관련한 과로, 일과 삶의 균형, 건강권 등에 대한 문제를 논의해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임금 삭감, 중소기업의 타격 등에 대한 맹점에 대해서는 "주4일제가 당장 내년부터 시행되진 않는다. 현재 심 후보를 제외하면 이를 공약으로 내세운 여야 유력후보가 없다. (노동시간 단축은) 주4일제, 주32시간제, 유연근무제 등 다양한 제도로 논의해볼 수 있지만 아직 어떠한 제도를 운영할 지에 대해서도 논의된 바가 없다"며 "현재는 어떻게 제도를 설계하고 보완할 지에 대해 논의해 나가는 과정이므로 (문제점에 대해) 속단은 이르다"고 설명했다.
박현주 기자 phj032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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