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김세영 기자] 덕후는 ‘한 분야에 열중하는 사람’을 의미하지만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다. 일본어 ‘오타쿠’를 누리꾼 사이에서 유사한 발음인 ‘오덕후’로 바꿔 부르며 생겨난 줄임말이다. 이른바 ‘덕후 문화’는 최근 긍정적인 인식을 내포한 문화적 코드로 자리 잡아 대중 속으로 빠르게 흡수되고 있다.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전시실2, 프로젝트 갤러리2)은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전을 11일부터 7월 9일까지 연다. 열한 명 작가들의 신작으로 구성된다. 식물, 핸드폰 액세서리, 영웅물 영화, 낚시, 만화 등을 소재로 마니아(mania)적 기질이 물씬 풍기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중 고성배 작가(34)는 덕후를 연구하는 덕후로 주목받는다. 그의 전시 ‘더쿠 메이커’는 프로젝트 갤러리2에 따로 마련됐다. 관람객이 어떤 덕후 기질을 지녔는지 직접 테스트도 가능하다. 혼자놀기,은폐·엄폐, 만화, 중2병 등 (흔히 비웃을 수 있는) 덕후의 습성 10가지를 주제로 한다. 예를 들면 정형화된 모습으로 등장하는 이른바 ‘만화 고기’를 직접 만들어보거나 간단하게 마법과 초능력을 수행할 수 있는 ‘황당한 비법’을 알려주는 형식이다.
고 씨는 독립잡지 '더 쿠(The Kooh)'를 제작한다. 기획, 편집부터 판매까지 혼자하고 있기 때문에 그가 곧 에디터이자 편집장이다. 그는 “책을 판매할 땐 '다섯 권을 모으면 오덕후가 되고. 열권을 모으면 십덕후가 된다'고 홍보한다. 10권까지 만들면 폐간되는 프로젝트성 잡지다. 작가라기보다 편집자다. 지면에서 하는 것들을 미술관에 그대로 옮겨왔다”고 했다.
일본 하위문화로 여겨졌던 ‘덕후’를 넓은 의미로 바라보려는 시도다. 고 씨는 “덕질은 대개 쓸모없는 일이라고 여겨지기 쉽다. ‘왜 그런일은 하냐’고 생각한다. 그런 모습들이 볼썽사나워 (출판을)시작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모든 사람이 ‘덕후’라고 생각한다. 맛집을 찾거나 옷을 만들어 입고, 건담을 모으는 등 누구나 좋아하는 것이 다를 뿐 특정취미에 국한되지 않는다”고 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덕후’는 일본 애니매이션 마니아를 중심으로 한 폐쇄적인 사회 부적응자들을 일컫는 말이었다. 하지만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 복잡한 미디어 환경 속에서 덕후의 의미는 이동하고 확장됐다. 개인의 취향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인식과 함께 대중에게 재미있고 특별한 취미활동으로 존중받기 시작했다. ‘덕후 문화’는 스스로 내면이 원하는 바를 인지하고 이를 위해 자기 주도적으로 몰입하는 자세를 함의한다.
그러나 전시회 측은 일반인 덕후를 섭외하지 않았다. 김채하 큐레이터는 “일반인 덕후는 컬렉션 정도와 정서의 차이에 따라 수준을 가늠하는데 주로 초점이 맞춰져있다. 작업물로서의 의미보다 경쟁 심리로 인한 요소가 크게 작용한다. 현재 덕후문화가 동시대문화에서 어떠한 양상으로 보여줄 수 있는지 다채롭게 제시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이를 미술작가들의 작품을 통해 접할 수 있도록 기준을 잡았다”고 했다.
김세영 기자 ksy123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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