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쌀이라 하는데 포항 사시는 할머니는 살이라고 해요.(중략) 쌀밥을 많이 먹어 밥심으로 농사짓는다는 할머니. 할머니가 말하는 '살'은 쌀도 되고, 살도 되고, 힘도 되지요” 어느 동시집에 나오는 내용이다.
경상도 사람의 구강구조 때문도 아니고 '쌀'을 발음 못해 '살'이라고 하는 것도 아니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그냥 오래전부터 쌀을 살이라고 발음해왔기 때문에 그리 말하는 것뿐이다.
쌀이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면 '씨알'의 줄임말 또는 고대 인도의 산스크리트어 '사리(Sari)'에서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있다. 일부에서는 쌀이 우리 몸의 살과 같아서 유래된 것이라는데 무게를 두기도 한다.
이는 사람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쌀이 필수라는 얘기로 한국인들이 쌀을 가장 귀중한 양식으로 인식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며 쌀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살이라는 의미는 단순하게 '육(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먹을거리라는 의미를 분명히 담고 있다.
하지만 요즘 쌀은 억울하다. 언제부터 인지 탄수화물이 비만의 주범인 것처럼 여기게 됐고 탄수화물을 줄이기 위해 쌀밥의 섭취를 가장 먼저 줄이게 됐다.
거기에다 최근 고지방 저탄수화물 다이어트 열풍까지 불어 억울해도 이만저만 억울한 것이 아니다. 대한비만학회 등 5개 전문 학술단체가 “극단적인 형태의 고지방 저탄수화물 식사는 국민 건강의 심각한 위해가 될 수 있다”는 입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는 쌀이 아니라 탄수화물의 질과 양으로 파악해야 한다. 쌀이 갖고 있는 탄수화물인 전분은 소화 흡수가 느려 급격한 혈당상승을 방지해주기 때문에 오히려 비만과 당뇨예방에 효과적이다.
설탕처럼 정제과정을 거친 단순 탄수화물은 포만감을 느낄 새도 없이 빠르게 흡수돼 많은 양을 섭취하게 되지만 쌀과 같은 복합탄수화물은 몸에서 천천히 분해되기 때문에 포만감이 유지되어 오히려 과식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오히려 쌀이 사람들의 입에서 멀어질수록 비만과 생활습관 질병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추측케 하는 통계도 있다.
농협 축산경제리서치에 따르면 2014년 기준 우리나라 19세 이상 중 비만인 사람의 비율은 31.5%로 무려 3명중 1명 꼴로 나타났으며, 지난 10년간 지속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조사됐다.
외국에서 들어온 기름진 음식을 즐기거나 지나친 육식 섭취, 집밥 대신 패스트푸드와 외식을 즐기는 사람이 늘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쌀은 탄수화물 뿐만 아니라 단백질과 식이섬유, 비타민B와 E, 마그네슘 등을 함유하고 있다.
쌀 단백질은 다른 곡류에 비해 상대적으로 함량이 적지만 양질의 단백질로, 필수 아미노산인 '라이신'이 함유돼 혈중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감소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밀보다 두 배 가량 많은 식이섬유는 장운동을 도와 변비개선에도 좋다. 또 쌀 음식을 주기적으로 섭취하면 대장에서 발효과정에서 만들어진 '낙산'이 대장암 발생을 억제시키는 등 각종 질병 예방에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밥이 보약이라는 말은 비유가 아닌 과학인 것이다.
한 방송사에서 방영됐던 '요리인류-키친'은 다양한 나라와 지역의 고유 음식을 소개하며 그 지역의 사람과 역사, 문화와의 궁합과 유래를 흥미진진하게 다뤄 관심 있게 시청했다. 유구하게 이어온 그 지역 특유의 음식에는 결국 사람은 물론, 정서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을 잘 표현했다.
우리도 대대로 먹어온 쌀의 유전자가 우리 몸에 새겨져 있음을 기억하고 우리 쌀이 지닌 영양학적 우수성을 바로 알아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해야 한다. 맛있는 밥이 지닌 자르르한 윤기와 씹을수록 은은한 풍미를 상상해 보자. 쌀은 우리 몸 안의 대지이자, 어머니, 가장 오래된 보약이다. 이제 우리 쌀이 억울하게 쓰고 있는 누명을 벗겨주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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