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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여자傳⑭]서울 우이동 도선사, 낙산 청룡사엔 '나합'의 입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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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섬의 '나합'스토리 - 나주에 김좌근 비석이 서 있던 까닭은, 그녀가 구휼미를 풀었기 때문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


경기도 광주군 정수산에 있는 수도사는 1859년 김좌근이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 서울 강북구 우이동에 있는 도선사도 1863년 김좌근이 시주로 중수했으며 이때 칠성각도 지었던 기록이 있다. 종로구 숭인동 낙산에 있는 청룡사는 1853년 그가 중창한다.

그가 이렇듯 절에 관심을 기울인 것은 나합의 힘이 컸을 것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중이 되고자 꿈꾸었을 만큼 불교에 심취했다. 나주의 불회사에서 보았던 연리지를 되새기며, 그녀는 김좌근을 깊이 사랑했을 것이다. 또 선택할 수 있는 카드 중에서 ‘행운’만을 집어내서, 세상과는 상관없이 넉넉하게 살았던 나합은, 사후의 삶까지 욕심을 부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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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또 무속에도 관심이 많아, 큰 굿을 열고난 뒤에 그들의 자손에게도 벼슬을 주었다. 그는 이 벼슬인심이 세상을 혼탁하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거의 깨닫지 못할 만큼 사회인식이 박약했던 것 같다. 김좌근처럼 눈 앞에 보이는 의리와 선심으로 자족하며 ‘나쁜 시대’를 더욱 나쁘게 하는 방식으로 살아나갔다.


나합은 나주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다. 전국에 흉년이 들자 김좌근을 조르고 졸라 나주에 구휼미를 풀게 하였다. 그녀는 김좌근에게 “나주를 아끼는 것은 나를 아끼는 것과 다름 없으니, 그 마음이 내 입에 밥을 떠넘기는 것처럼 달콤하고 기쁩니다”라고 말했다.


이런 일로 나주 관아터에는 김좌근에 대한 불망비(不忘碑)가 서 있다. 안동김씨의 세도정치가 끝난 뒤 그 비석은 사람들에 의해 두 동강이 났는데, 나중에 금성관 경내에 다시 바로 세웠다고 한다.






이상국 기자 isomis@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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