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류정민 차장] '헌재 發 정치태풍' '선거구 빅뱅 온다' '선거구 리셋'….
2014년 10월30일 오후 2시18분,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헌재 결정이 나오자 언론은 긴급 뉴스로 관련 소식을 전했다. 헌재는 공직선거법 '제25조(국회의원 지역구의 획정)' 2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당장 위헌 결정을 내리면 혼란이 예상되므로 특정 시점(2015년 12월31일)까지 선거법을 개정하라는 취지다. 헌재는 국회의원 지역구 최대 선거구와 최소 선거구 인구비례를 3대 1에서 2대 1로 조정하라고 권고했다.
지역구 출마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선거구 획정'은 정치 생명이 달린 문제다. 예를 들어 경기도 여주는 8년 전 제18대 총선에서 이천시·여주군으로 묶여 선거를 치렀다. 하지만 4년 전 제19대 총선에서는 여주군·양평군·가평군이 한 선거구였다.
선거구 획정이 제때 이뤄지지 않으면 출마 희망자나 유권자는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출마 희망자들은 아침저녁으로 출퇴근 인사에 열중하지만, 그곳이 자기 출마 지역인지 아닌지도 확신하기 어렵다.
헌재가 선거구 전면 조정에 따른 혼란을 무릅쓰고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이유는 '투표가치의 평등'이라는 대원칙 때문이다. 대의 실현을 위해 국회가 역할을 해줄 것이란 믿음도 담긴 결정이었다. 1년 2개월이라는 여유 시간을 줬으니 충분히 논의해 더욱 합리적인 개선안을 마련해 달라는 취지다.
문제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이 쉽지 않다는 점이다. 여야 어느 쪽도 양보하려 들지 않았고, 농촌 지역구 의원들은 '희생양'이 되지 않겠다면서 똘똘 뭉쳐 공동대응에 나섰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할지,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를 놓고 논의는 뒤죽박죽 꼬이기만 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중재에 나설 것이란 기대도 있었지만, 그 조직도 여야 입김에 휘둘렸다. 그렇게 하루하루 귀중한 시간이 흘러가고 결국 헌재가 정한 개정시한을 넘기고 말았다. 이제 법률상 국회의원 지역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행 지역구 획정 기준은 법의 효력을 잃었다.
헌재는 국회의 '합리적 타협'을 기대했지만, 국회는 보란 듯이 외면했다. 이러한 답답한 현실을 2014년 10월에 이미 예감한 헌법재판관들도 있다. 박한철, 이정미, 서기석 재판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들 재판관은 기존 선거구 획정 기준에 대해 '지역 대표성'을 강조하면서 합헌 의견을 냈다.
그들이 합헌 의견을 낸 다른 이유는 선거구 재획정을 둘러싼 혼란 상황을 예감했기 때문이다. "선거구 구역표 전체의 대부분을 조정해야 하는데, 원활한 조정을 기대하기 어렵다.", "선거구 숫자를 늘리는 방안 역시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할 때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라는 이유였다.
헌법재판관 3인이 지적했던 '슬픈 예감'은 현실이 되고 말았다.
15일 현재 20대 총선은 58일 남았다. 후보자 등록일인 3월24일을 기준으로 하면 불과 38일 남았다. 총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여야는 여전히 힘겨루기에만 몰두 중이다.
국회의원들이 무능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오히려 '현역 프리미엄'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 애가 타는 쪽은 인지도에서 뒤지는 정치 신인들이다. 현역 의원들의 '의도된 무능'으로 20대 총선은 이미 불공정 선거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류정민 차장 jmryu@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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