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9월5일은 화요일이었다. 독일(당시에는 서독)에서 뮌헨올림픽이 열렸다. 새벽 네 시, 괴한 여덟 명이 올림픽선수촌의 담을 넘었다. 운동복 차림이었다. 자동소총과 수류탄으로 무장한 이들은 이스라엘 선수 스물여덟 명이 묵는 숙소로 뛰어들었다. 총성에 비명이 섞이고, 놀란 이스라엘 선수들이 창문을 통해 피신했지만 두 명이 죽고 아홉 명이 인질로 잡혔다.
괴한들은 자신들이 '검은 9월단(Black September)' 소속이라고 했다. 검은 9월단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의 극좌 게릴라 조직이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억류한 팔레스타인 포로를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독일 경찰이 협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총격전이 이어졌다. 인질 아홉 명이 모두 숨졌고 테러범들도 사살 또는 생포됐다.
이 사건은 피의 보복, 테러의 악순환을 낳았다. 각국은 대(對)테러 전문부대의 필요를 절감해 다양한 형태의 대테러 전문 특수부대를 양성했다. 독일 경찰은 직할 조직 'GSG-9'을, 독일 연방군은 특수부대 'KSK'를 창설해 운용하고 있다. 가장 강하게 반응한 나라는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 공군은 뮌헨 테러 직후 레바논 영내의 팔레스타인 난민 캠프를 폭격해 수많은 민간인을 죽였다.
이스라엘은 이른바 '신의 분노' 작전을 수립해 검은 9월단의 지도자들을 암살했다. 6년3개월에 걸친 이 작전을 이끈 인물은 모사드 요원 마이크 하라리다. 그는 1972년 연말에 리비아 대사관의 직원으로 위장 취업한 아델 즈와이테르를 암살했다. 이듬해 검은 9월단의 책임자 아부 유세프, 1979년에는 지도부 요인 중 유일한 생존자인 작전사령관 하산 알리 살라메를 차례로 죽였다. 검은 9월단은 붕괴됐다. 하라리는 지난해 9월 텔아비브에서 죽었다.
2005년에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뮌헨'은 이스라엘이 뮌헨 테러 이후 수행한 암살 작전에서 소재를 구했다.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를 제작한 동기를 밝혔다. "그날 내가 보던 텔레비전 상표까지 정확하게 기억한다. 생중계되던 뮌헨올림픽 테러 사건의 현장은 20대 청년이었던 내게 지울 수 없는 인상을 남겼다. 그 이후 '9월의 어느 날'이란 뮌헨올림픽 테러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사건의 진실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됐다."
영화 뮌헨은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두 인간적으로 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스필버그 감독은 영화 뮌헨이 세계 평화를 위한 기도라며 이스라엘의 이해를 구했다. 뮌헨 테러 희생자들의 유족들에게 가장 먼저 영화를 보여주는 배려도 했다. 유족들은 '비극을 전하는 좋은 작품'이라고 했다. 반면 모사드는 "사실과 다르다"고 비판했다. 모사드는 "게릴라를 암살한 목적은 보복이 아니라 추가 테러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고 주장했다.
나는 누적관객 수 1000만명을 훌쩍 넘었다는 영화 '암살'을 8월이 저물 무렵에야 보았다. 암살을 사전은 '정치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비밀리에 살해하는 행위'라고 정의한다. 암살을 뜻하는 영어 어새시네이션(assassination)은 아랍어 하시신(hashishin)에서 나왔는데, 하시신이란 '하시시(마약)를 먹은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암살은 맨 정신을 갖고는 해낼 수 없는 힘든 일일 것이다. 주인공인 저격수 안옥윤(전지현)이 타깃을 정확히 식별하기 위해 왼쪽 알이 깨진 안경을 꺼내 쓰는 장면은 그래서 더 싸늘하다. 암살은 권력에 의하거나 권력을 대상으로 한다. 어떤 경우든 불안과 긴장의 원인이 된다. 특히 혁명이나 쿠데타와 관계가 있다.
영화 암살에 대한 열광은 권력에 대한 혐오 때문이라는 해석이 있다. 나는 그 이상이라고 본다. '이대로는 도무지 안되겠다'는, '뭔가 한 번 와장창 뒤집어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보통 사람들의 기대를 반영했으리라고 상상한다. 혁명에 대한 갈망. 물론 그들은 직접 나설 생각이 없다. 나처럼 키보드나 두드리면서 속으로 중얼거리는 힘없고 순진한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관객이다. 영화에 대해서든 테러에 대해서든 열광이란 우리 영혼의 폐허에 서식한 신기루가 아닐까.
허진석 문화스포츠레저부장 huhball@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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