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나라의 정부연구개발비 예산은 무려 19조원에 달합니다. 국내총생산 대비 비율로는 세계 1위로 평가될 정도입니다. 하지만 과연 이런 엄청난 예산에 걸맞은 연구개발성과가 창출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체로 회의적인 시각이 많습니다. 논문이나 특허의 양과 같은 비교적 달성하기 쉬운 지표는 크게 증가해 왔지만, 논문의 인용 수나 기술사업화 수입과 같은 지표들을 살펴보면 부끄러운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미래창조과학부 내에 과학기술전략본부라는 조직을 신설하고 연구개발에 관한 전략수립과 예산배분을 총괄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연구주체 간 중복연구를 배제하기 위해 모든 연구관리기관을 통폐합한다는 방침도 있습니다. 정부가 '뭔가' 하고 있다는 분명한 대답인 셈입니다.
우리는 많은 일에 대해서 정부가 뭔가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쉽게 '정부는 뭐 하는 거냐'고 힐난합니다. 공무원들은 이런 비판에 민감하고, 그래서 서둘러 대책을 내놓습니다. 수많은 진흥정책, 구조조정정책, 그리고 규제방안이 탄생한 까닭입니다. 최근에도 이런 흐름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전 세계에 핀테크(금융+기술) 열풍이 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규제와 금융기관의 보수성 때문에 동참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정부가 뭔가 해야 한다는 비판이 커지자 정부는 "한국형 인터넷은행"의 설립이라는 대안을 들고 나왔습니다. 정부가 주도해서 온라인에서만 존재하는 은행의 설립을 이끌어내겠다는 정책입니다.
앞으로 대학에 진학할 학령인구가 크게 줄 것이고 따라서 여러 대학이 문을 닫아야 할 텐데 정부가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도 빗발쳤습니다. 정부는 우리나라의 모든 대학을 다 같은 기준에 따라 평가해 등급을 매긴 다음 그 등급에 따라 대학 정원을 강제로 줄이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습니다. 대학의 사활이 걸린 이 평가에 대비하기 위해 전국의 모든 대학은 작년 말부터 지난 4월까지 엄청난 자원을 투입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이런 강제적 정원조정이 법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유권해석이 나왔습니다. 지금 허탈한 마음을 달래는 대학 관계자들이 적지 않은 까닭입니다.
정부에게 책임을 돌리고 대책을 요구하는 것은 달콤한 유혹입니다. 우리 앞에 놓인 문제를 스스로 풀어내야 한다는 부담과 책임의식에서 손쉽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부가 감당하는 것이 마땅한지,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 일 인지 깊이 숙고하지 않은 채 정부의 역할을 요구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그런 요구에 대응한 결과 정부는 우리나라만의 모바일 운영체계를 만들거나, 한국형 유튜브를 구축하거나, 이미 한식당이 많은 뉴욕에 한식당을 운영하겠다고 나서는 따위의, 돌이켜보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을 벌이기도 합니다.
그 거대한 연구개발예산의 기획과 관리를 소수의 비전문관료가 중앙집권적으로 담당하는 것과 연구개발의 전문가인 과학기술자들이 준엄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연구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하는 것 가운데 어떤 방법이 더 나을까요? 수천 억원을 들여 인터넷전문은행을 새로 설립하는 것과 핀테크라는 도전을 만난 금융기관이 절절한 위기의식을 가지고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어내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시장혁신을 이끌어내게 될까요? 교육부의 불안정한 정책에 따라 전국의 대학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것과 대학이 스스로 혁신적인 교육플랫폼으로 변신하는 것 가운데 어떤 것이 더 미래지향적인 교육구조개혁일까요?
정부의 엉뚱해 보이는 정책의 배후에는 개인의 무책임함이 섞여 있을지도 모릅니다. 정부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대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도록 요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늘도 뉴스를 보면서 '정부는 뭐 하는 거냐'라고 투덜거리다가 문득 자문해봅니다. '너야말로 도대체 뭐 하는 거냐'라고 말입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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