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맥없이 가라앉아 있던 증권시장이 요즘 펄펄 날고 있다. 종합주가지수 코스피가 2100선을 뚫었고 코스닥 지수 역시 700선을 넘나들고 있다. 거래대금이 증가하는가 하면 각 증권사 지점에는 "오랫동안 잠자던 증권계좌를 다시 살려달라"는 전화가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주식을 샀다 팔았다 하는 초단기매매, 즉 데이트레이딩의 비중도 늘어나 이달 들어서는 거래비중의 37%를 넘어서기도 했다. 증시활황에 자신감을 얻은 때문인지 자본시장에서는 "넘사벽으로 간주되는 종합주가지수 3000시대를 열어가자"는 말까지 들린다.
갑작스러운 증시활황의 이유는 무엇일까. 저금리에 지친 사람들이 기대수익률이 높은 증권시장으로 이동하는 '금융권 머니 무브(money move)'의 장기적 추세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좀 더 내용을 깊이 들여다 보면 그렇게 낙관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징후들이 보인다.
우선 증시활황의 펀더멘털이 돼야 할 실물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있다. 가계빚이 1000조가 넘는 시대에 원금은커녕 이자상환도 부담스러운 가계가 소비를 대폭 줄이고 있고 경기부진으로 기업소비에 해당되는 투자도 늘지 않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한국의 실질국내총생산 성장률은 지난해 3.3%에 그쳐 주요 20개국(G20) 전체 평균인 3.4%보다 낮았고 4년째 G20 전체 평균을 밑돌고 있다.
또 통계청에 따르면 올 1~3월 사이에 폐업한 자영업자 수가 4만9000명이나 된다고 한다. 한국 베이비부머 마지막 세대인 1963년생까지 50대에 접어들어 대규모 인구집단이 도산매ㆍ음식료업 등에 진출하면서 시장경쟁이 치열해져 음식점, 치킨집, 상점 등의 폐업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정부가 소상공인 살리기에 2조원이나 되는 정책자금을 썼지만 고부가가치형의 차별화된 자영업 육성이라는 근본처방보다는 대출금리를 낮춰주는 정도의 미봉책에 그치다 보니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한 채 경쟁만 더 치열해져서 함께 몰락하는 구조가 된 것이다.
실물경제는 어려운데 왜 증시만 나홀로 고공행진을 계속하는 것일까. 최근 증시를 견인하고 있는 가장 큰 힘은 자력이라기보다는 외국의 '핫 머니'다. 외국인들이 올 들어 4월15일까지 순매수한 누적액은 4조 6000억원이 넘는다. 과거 경험상 외국인들의 투자전략은 환율이 높을 때 거의 제로금리인 유로시장에서 달러를 빌려 한국증시에 투자하고 거액의 해외자금유입으로 환율이 하락하면 다시 달러로 빼 나가는 패턴인데 이미 환율하락 조짐이 나타나고 있어 머지않아 자금유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국내에서는 빚을 내어 주식에 투자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5조원을 밑돌던 신용융자잔고는 최근 6조2000억원을 넘어섰다. 저금리가 장기화되면서 싼 이자로 돈을 빌려서 단기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증권시장에 투자하려는 이른바 캐리트레이드(carry trade)도 늘고 있다.
최근의 증시 활황이 외국인 투자자들의 '잠깐 놀이터'에 그치거나 빚에 의존한 투자자들의 반짝 버블이 되지 않게 하려면 증시에 대한 관심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근본적인 개혁이 필수적하다. 정부는 실종된 리더십을 하루빨리 되찾아 펀더멘털을 강화해야 하고 기업은 소액주주들의 권리를 배려해 투명경영과 함께 배당확대에 중심을 둬야 한다. 우량 가치주를 사면 장기적 배당수익률만으로도 이자보다 높다는 분명한 확신을 주어야 한다. 금융회사는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자정노력을 기울여 과거 여러 가지 불완전판매 사건으로 잃어버린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모처럼 증시가 활황을 보이고 자본시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한 바로 이 시점이 경제와 금융시장 개혁의 최적기라고 할 수 있다.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경제금융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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