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의학(四象醫學)은 사람의 체질을 네 가지로 나눠서 해당 체질에 적합한 한약치료를 시행하는 우리나라의 전통 의료모델이다. 조선 말기의 유학자이자 의학자인 이제마(1838-1900)가 그의 저서 '동의수세보원'에서 처음으로 사상의학을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사람의 네 가지 체질은 체형, 성격, 증상 및 약물반응에 의해서 구분되어질 수 있으며, 같은 증상이라 할 지라도 사람의 체질에 따라 다른 약물을 써야 효과적으로 치료될 수 있다.
최근 보건의료의 핵심화두로 맞춤의학이 손꼽히고 있다. 맞춤의학의 정의는 전문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긴 있지만, 대개 '환자 개인에게 최적화된 진단방법 또는 치료방법을 결정하기 위해 각 개인의 유전적, 환경적, 체질적 혹은 생물학적 특성에 기반한 의학모델'이라는 점에서는 공감하고 있다. 최근의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 맞춤의학 시장 규모가 약 3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맞춤의학은 이미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는 듯 보인다.
궁극적으로는 각각의 개인에 대한 맞춤 치료법이 나오는 것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지난 2000년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연구결과가 조기 발표 되었을 때, 개별 맞춤의학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는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체는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유전자와 표현형은 일대일로 연결된 것이 아니라 다대일 혹은 일대다라는 복잡한 양상의 대응관계로서, 하나의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많은 과학자들의 노력 끝에 탄생한 폐암약인 이레사나 암 표적치료제인 허셉틴은 유전체 연구에 의한 맞춤의학 실현의 초기 성과임에 분명하지만, 아직 유전체 분석 기반의 개별 맞춤의학은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실현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상의학은 이러한 면에서 실용적으로 집단화된 전통 체질 맞춤의학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의 체질을 크게 넷으로 구분한 후, 각각의 체질에 적합한 약재와 처방을 기본적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상의학을 보건의료체계에 접목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과학적인 연구결과들이 확보된다면, 300억 달러에 이르는 맞춤의학 시장의 한 축을 우리가 선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6년부터 사상의학을 현대적인 한국형 체질이론으로 해석하기 위한 다학제 융합 연구인 '이제마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착수했으며, 2012년에는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3단계 실용화 연구가 시작될 예정이다.
작년 가을 휴대폰을 비롯한 휴대용기기의 한글자판에 대한 국제표준을 마련하자는 중국의 황당한 제안이 있었는데, 사실 알고 보면 이 제안은 그다지 황당한 제안이 아니다. 중국 국민을 구성하고 있는 29개 민족 중 한글을 쓰는 조선족이 있기 때문이다. 여하간 이 제안으로 인해서인지 우리 정부는 올해 국내 휴대폰 제조사 및 이동통신 3사와 합의를 거쳐 한글 입력방식 표준을 채택했다.
그런데 비슷한 문제가 사상의학에도 존재한다. 이제마 사후 이제마의 일부 제자들은 지난 100여 년 간의 한반도 정세에 휩쓸리면서 거점인 함흥지역을 떠나 남쪽으로 남하하기도 했고, 그 중 일부는 현재의 연변지역으로 북상해 사상의학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최근 중국정부는 이들의 권리를 인정하여 연변의 '조의사(朝醫師)'를 중국 국가자격시험에 편입시켰다. 이제 곧 중국 측에서 우리에게 사상체질 진단 표준안을 같이 만들자고 할지도 모른다. 아직까지는 중국의 사상의학 연구인프라가 취약한 편이지만, 언제든 대규모의 인력과 재원을 투자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사상의학을 기반으로 한 전통 맞춤의학의 체계를 과학적으로 갖추는 한편, 우리의 자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함께 힘을 모아야 할 때다.
이시우 체질의학임상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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