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채지용 기자] 김중수 한국은행 총재가 취임후 가장 큰 난제에 봉착했다. 명함에 들어가는 '총재'란 직함을 놓고 임명권자인 이명박 대통령과 의견을 달리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김 총재는 그동안 "독립성을 훼손한 총재" 또는 "무능한 중앙은행"이란 비판은 받았지만 '대한민국 중앙은행 수장'으로서의 자부심으로 책임과 역할을 수행해왔다. 하지만 이제 이마저도 힘들게 된 것.
이 대통령은 지난 16일 국무회의에서 민주화 사회에 어긋난다며 권위적인 느낌을 주는 '총재'란 명칭을 바꾸라고 지시했다. 한은 직원들은 이 대통령 취임 직후 산업은행 총재 명칭이 은행장으로 바뀐 이후 총재란 호칭을 쓰는 곳이 한은과 대한적십자사 등에 불과해 이번 지시가 한은을 직접 겨냥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은 총재'가 '한국은행장'으로 격하될 위기에 봉착한 것이다.
한은 직원들은 즉각 발끈하고 나섰다. 국회에서 한은법을 개정해야 하는 절차상의 문제는 제쳐 두고 우리나라의 통화ㆍ금리정책을 담당하는 중앙은행의 차별성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영란은행과 일본은행 등의 경우도 수장을 '총재(Governor)'로 지칭하고 있어 일부 정부 기관이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총재란 명칭을 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뭔가 이해를 잘못해서 나온 지시로 보는 것이다.
청와대의 한은에 대한 시각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한은은 김 총재 취임 이후 독립성을 의심받으며 정체성에 혼란을 겪어왔다. 1년 반 가까이 파행운영되고 있는 금융통화위원회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금통위원의 공석은 61년 한은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그러나 한은 총재는 이에 대해 무감각하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에게 적극적적으로 의견개진을 하지 않음으로써 독립성과 권한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월 한은 노동조합은 "정부의 한은 무시와 중립성 훼손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며 조속한 금통위원 임명을 촉구했다. 하지만 정부와의 교감을 중요시하는 김 총재는 금통위원 한 명의 부재가 큰 문제가 안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렇게 자꾸 한발 두발 밀리다보면 과거 독재정권 시절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로 불렸던 한은이 이제 '청와대 출장소'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이지 싶다.
채지용 기자 jiyongc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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