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박연미 기자]
내수를 살리자더니 이래서야 경제 부처 공무원들 여름 휴가나 제대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명박 대통령의 요란한 물가 전쟁 탓이다.
어제까진 없던 물가 불안이 하루 아침에 찾아오기라도 한듯 대통령은 있는대로 가속 페달을 밟는 중이다. 18일 수석비서관회의에 이어 20일엔 직접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열고 "매주 장관들이 물가를 챙기라"고 했다. 관계 부처들은 대통령에게 등 떠밀려 다음주 또 한 번 종합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번갯불에 콩 구워먹을 대통령의 스피드를 따라잡느라 관가는 정신이 없다.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내놓은 게 불과 20일 전. 경제부처 당국자들은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단기 속성 물가대책'을 짜내느라 울상이다. 올들어 재정 차관이 주재한 민생안정대책회의만 20여차례, 기름값과 통신비부터 농산물, 외식비 가격까지 다루지 않은 게 없지만 국민 평가단의 점수는 박하다. 행정부의 1인자인 대통령 보기에도 성과는 시원치 않았던 모양이다.
중간 보스들이 해결 못한 맞수 잡으러 나가듯 물가 전쟁 전면에 선 대통령은 시시콜콜 대책의 스타일까지 정해줬다. "이전에 했던 것처럼 단속·점검 등 통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발상의 전환을 해 기본적으로 물가 구조 체계를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발굴, 검토하라"고 했다. "천편일률적 방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문도 덧붙였다. 행간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창의력'이다. 한 마디로 '뻔하지 않은 대책'을 가져오라는 채근이다.
한데 대통령이 창의력을 강조하며 내린 지침 자체가 창의적이지 않다. 역대 물가 대책엔 빠짐 없이 '중장기 구조개선' '경쟁을 통한 가격 인하 유도' 같은 말이 들어가 있다. 대통령만 아는 얘기가 아닌데 잘 안될 뿐이다.
물가 잡기, 중요하다. 민심이 차갑다. 발등에 떨어진 불 맞다. 그렇지만 '대책 나와라 뚝딱'식으로 공무원들을 잡아가며 대통령이 호들갑을 떠는 건 볼썽사납다. 장관들을 졸(卒)로 만들며 슬며시 책임에서 비켜가려는 건 아닌지 의심마저 하게 된다. 속도전은 재탕, 삼탕한 '사골 대책'을 부르게 마련이다. 그럴 줄 알면서도 속도에 목을 매는 대통령의 모습은 그가 비판한 '스타일리스'들과 무엇이 다른 걸까.
박연미 기자 cha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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