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대기업 손잡고 신선식품 지원
美, 먹거리 정의 부서 신설
日, 민관 협동으로 이동식 마트 확대
"쇼핑 즐거움 줘야" 노인복지 차원 접근
식품사막에 대한 개념을 우리나라보다 먼저 정립한 미국, 일본 등 해외 주요국은 정부 정책을 기반으로 민관 협동 시스템을 구축해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법이나 지역 조례를 만들어 지방자치단체와 기업이 손을 잡고 식품사막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지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것을 우선순위로 삼는다. 중앙 정부의 대응이 걸음마 단계인 우리나라가 앞으로 식품사막 확대를 막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입법과 더불어 다자 협력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시사점을 남긴다.
케첩은 알아도 토마토 모른다는 美…먹거리는 곧 정의
미국 정부는 누구나 공평하게 신선한 식품에 접근해야 한다는 '먹거리 정의(food justice)' 실현을 정책 추진의 중심에 두고 있다. 미국의 식품사막이 식품에 대한 접근성 문제를 넘어, 빈부격차와 인종차별 문제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빈곤층이 많은 저소득 지역을 중심으로 식품사막이 형성된다. 농무부 보고서에 따르면 식품사막에 놓인 사람들은 약 1900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6%를 차지한다. 식자재를 직접 요리하는 대신 간단한 냉동식품이나 가공식품을 섭취하는데, 이들을 두고 '케첩은 알아도 케첩의 원료인 토마토는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다.
학계는 백인 외 인종이 식품사막에 거주할 확률이 높다고 본다. 오래전부터 자본이 백인 주류 사회로 쏠렸고 식품사막은 결국 이를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것이다. 미국공중보건협회는 먹거리 정의 관련 연구에서 흑인이 당뇨병이나 비만을 진단받을 확률은 백인보다 1.77배, 원주민의 경우 1.6배 높다고 보고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국 주 정부 중에는 식품사막에 식료품점을 여는 사업자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곳이 많다. 다른 상권 대비 구매 능력이 떨어져 출점 자체를 꺼리기 때문에 정부가 이를 최대한 보조해주겠다는 것이다. 일리노이, 루이지애나, 오하이오주 등은 식품사막에 출점하는 개인이나 유통업자에게 매달 보조금, 저리 대출 등을 지원하는 법을 제정했다. 식품사막 관련 법안이 국회 상정조차 안 된 데다, 지역 농협이나 마을 협동조합이 발 벗고 이동식 마트를 시행해주기만 기다려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식품사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컨트롤타워를 두는 주 정부도 있다. 보스턴은 아예 '먹거리 정의부(Office of food justice)'를 신설했다. 이 부서는 '지속 가능하고 정의로운 식품 시스템을 구축한다'는 슬로건을 내걸고 식품사막 해결에 나서고 있다. 농수산물 생산자, 지역사회 단체 등과 협력해 식품사막에 공공 마켓을 여는 등의 방식으로 유통시설을 확충하는 데 힘쓴다.
우리나라 식품사막은 유통망이 잘 갖춰지지 않아 e커머스 배송 불가 지역에 해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식품사막에 놓인 사람들만을 위한 온라인 서비스가 존재한다.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탄젤로(tangelo) 애플리케이션(앱)이 대표적이다. 지역 병원 등은 식품사막에 사는 저소득자를 발견하면 탄젤로 앱 가입을 권유한다. 앱 가입 후 소득심사를 통해 수급 자격이 인증되면 포인트가 들어오는데, 이를 통해 6개월간 집으로 신선한 과일과 채소나 이를 사용한 건강 도시락을 받아볼 수 있다.
일본 이동식 마트는 고령층 복지의 중심
일본의 식품사막은 고령화 문제와 맞물려 있다. 일본 농림수산정책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도보나 자동차로 식료품 소매점을 갈 수 없는 인구는 904만명에 이르는데, 이 중 566만명(63%)이 75세 이상이다. 후생노동성은 65세 이상 고령자 중 16.8%는 편중된 식생활로 저영양 상태에 있다고 경고했으며, 학계는 식품사막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이 때문에 노인들에 직접 식료품을 가져다줄 수 있는 이동식 마트를 대응책의 중심에 두고 있다.
일본은 민관협력을 통해 이동식 마트 사업을 전개 중이다. 대형마트 체인 이토요카도가 론칭한 이동식 마트 브랜드 '도쿠시마루'는 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지역을 골라 정기적으로 순회한다. 이토요카도는 마트 체인 운영 노하우를 이동식 마트에 그대로 반영했다. 기초적인 식사나 생활에 꼭 필요한 필수품뿐만 아니라 회, 초밥, 의류까지 다양한 상품을 준비해 지역에 활기를 주고 있다. 콩나물, 쌀, 달걀 등 기초적인 식사에 필요한 품목만 판매하는 우리나라보다 훨씬 구색이 다양해 종합 잡화점 성격이 짙은데, 선택지를 넓혀 노인들에게 여러 물건을 만지고 고르는 쇼핑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하겠다는 취지가 깔려 있다.
나아가 고령자들과 직접 접촉한다는 장점을 살려 300곳의 기초지자체와 '지켜보기 협정'도 맺고 있다. 보이스피싱 유형 등을 사전 교육해 고령자들이 범죄에 휘말리는 일을 막고, 건강에 이상이 생기거나 위급상황이 발생했을 경우 관계 기관에 신속하게 연계해주는 일을 한다. 민간기업과 협력을 도모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시너지를 충분히 활용한 사례다.
일본은 도심의 식품사막 해결에도 힘쓰고 있다. 도쿄 물가가 오르면서 고정 수입이 없는 고령자들의 구매력이 떨어졌고, 그러면서 수도에도 식품사막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일찌감치 경험했다.
도쿄도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도에서 운영하는 공공주택마다 이동식 마트를 배치했다. 민간 사업자들이 도쿄도에 사업 신청을 하면 도쿄도가 이를 분류해 필요한 기초지자체에 넘기고 기초지자체가 실정에 맞는 업체를 직접 선정하도록 한다. 이로 인해 공공주택이 위치한 지역의 특징에 따라 신선식품에 주력하거나 일상 용품 라인을 확대하는 등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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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영국과 호주도 일찍부터 식품사막 해결에 나선 국가로 꼽힌다. 영국은 중앙 정부에서 '헬시 스타트(Healthy start)'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균형 잡힌 식사가 필요한 시기 신선식품을 제공한다는 취지로, 임신 10주 이상이거나 4세 미만 자녀를 둔 가정에 유제품이나 과일, 채소를 구매할 수 있는 선불카드를 제공한다. 호주는 멜버른에서 먹거리 정의 실현을 위한 정책을 발표한 바 있으며, 푸드뱅크를 확대해 식품사막을 해소하는 데 힘쓰고 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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