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만7609개 행정리에 식품 소매점 없어
젊은 인구 도시로 쏠리며 마트 문 닫고
구매력 낮아지니 물류 체인도 비활성화
'식품사막'은 인구 감소 등의 사유로 식료품점이 문을 닫아 주민들이 신선식품을 구입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지역이다. 도농 격차, 빈부격차, 정보격차 등 다양한 비대칭의 문제가 교차하는 지점에 식품사막이 생긴다는 점에서, 불평등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면 그 범위가 계속 확장될 수밖에 없다.
젊은 사람 없어 구매력 줄자…마트 슈퍼 다 떠났다
정부는 지난달 20일부터 이달 22일까지 국가데이터처가 진행 중인 '2025 농림어업 총조사'를 토대로 전국 행정리의 식료품 소매점 실태와 대중교통 상황을 파악해 식품사막 확장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나설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2020 농림어업총조사'에서 전국 행정리 3만7563개 가운데 74%에 해당하는 2만7609개가 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것으로 조사된 이후에도 고령화와 농촌 인구의 감소가 계속돼 식품사막이 더 넓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조사에서 전국 도내 행정리 중 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마을의 비율은 전북특별자치도가 가장 높았으며(83.62%), 그다음은 전라남도(83.33%), 경상북도(78.86%), 충청남도(75.1%), 충청북도(75.04%) 순이었다. 이웃한 행정리에도 소매점이 없어 차를 타고 한 시간 이상을 나가야 하는 지역은 14곳으로 집계됐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식품사막이 경제력, 인구, 인프라 등 도농 격차의 여러 문제가 맞물리며 생겨난다고 분석한다. 대부분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먼저 젊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도시로 떠나며 인구 감소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경제활동이 활발한 세대가 떠나며 해당 지역의 구매력이 줄어든다. 객단가가 높은 사람들이 와야 수지타산이 맞는 백화점, 대형마트 등이 문을 닫는다. 쇼핑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없기에 젊은 사람들이 또 도시로 떠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대중교통 숫자도 줄어든다. 손익분기점을 넘을 만큼의 승객이 없기 때문이다. 고령화된 지역에서는 자차 보유자도 적을뿐더러 운전도 쉽지 않다. 농촌 주민 다수는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타거나 자식이나 지인에게 부탁해 차를 얻어타고 장을 보러 가는 일이 잦아진다. 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지역에서는 개인이 운영하는 슈퍼 등 식료품 소매점도 물류비, 인건비 등을 감당할 수 없으니 문을 닫게 된다. 점차 먹거리 접근성이 악화하고, 결국 식품사막이 탄생한다.
배달시키면 되지 않을까…유통 채널은 어떻게 붕괴하는가
나라살림연구소는 지난해 말 현재 전체 250개 시·군·구 가운데 쿠팡·SSG닷컴·컬리·오아시스의 새벽 배송을 받지 못하는 곳이 123곳(49.2%)이라고 집계한다. 식품사막에선 배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대형마트 등이 빠져나가며 물류체계가 사실상 붕괴하기 때문이다. 애플리케이션(앱)으로 신선식품을 고르면 다음 날 배송해주는 서비스의 경우, 대형 물류센터가 24시간 가동돼야 한다. 투자 요인이 없는 상황에서 대형 유통체인이 지방 곳곳 식품사막까지 커버할 수 있는 물류 체계를 구축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애초에 식료품 소매점이 없는 지역은 외식할 수 있는 음식점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신선식품 등을 들여오기 힘든 지역에서 매일 이를 조리해 판매해야 하는 업종이 성공하기란 어렵다. 배달앱을 사용해도 영업하는 음식점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고, 설령 있더라도 배달 불가 지역으로 뜨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정보격차도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 장보기 서비스가 가능한 지역이라 하더라도, 스마트폰 사용에 능숙하지 않은 고령자가 서비스를 다운로드받고 실행하기 쉽지 않다.
식품사막이 여러 격차의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불구, 식품사막에 대한 기준과 개념 정립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서구권과 일본에서는 1990년대부터 식품사막의 개념이 등장, 연구가 시작됐지만 우리나라에서는 2010년대 초반부터 해당 개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 농무부는 식품사막을 도시의 경우 1마일(1.6㎞), 농촌의 경우 10마일(16㎞) 내 신선식품을 구할 수 없는 곳으로 정의한다. 일본도 농림수산성에서 식품사막을 '식료품점이 도보 500m 이상 떨어진 곳'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식품사막이라는 용어와 관련한 통일된 정부 차원의 기준이 없다.
이 때문에 식품사막이라는 용어 자체가 혼재돼 사용되기도 한다. 학계에서는 이미 식품사막의 특성에 따라 용어를 구분해 사용하고 있다. 가령 도심에 생기는 식품사막은 해외에서는 '식품 늪(food swamp)'이나 '식품 신기루(food mirage)'로 구별한다. 주변에 식료품 소매점은 있지만 패스트푸드나 가공식품만 판매해 영양가 있는 신선식품 접근이 어려운 곳은 '식품 늪'으로, 식료품점이 존재하지만 가격이 높거나 소득이 부족해 구매할 수 없는 경우는 '식품 신기루'로 구별하는 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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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대책 마련 과정에서 반드시 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유찬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개인적으로는 미국이나 일본처럼 단순히 물리적 거리를 식품사막의 기준으로 두기보다, 이동 시간을 기준으로 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본다"면서도 "우리나라는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이를 엄밀하게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전진영 기자 jintonic@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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