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장례주관자를 택한 사람들
부산 동구 사전 장례 지정사업 실시
행정적 혼란 막고 존엄한 생 마감 도와
"고시원 총무로 일하면서 홀로 외롭게 떠나가는 이들을 너무 많이 봤습니다."
지난달 27일 부산 동구 범일동에서 만난 박상문씨(57)는 사전 장례주관자 지정 사업에 참여한 사연을 담담하게 설명했다. 사전 장례주관자 지정 사업은 무연고자 등이 생전에 자신의 장례를 맡길 사람이나 단체를 미리 지정하는 제도다. 사후에 발생할 수 있는 행정적 혼란을 막고 고인이 존엄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박씨는 올해 6월 사전 장례주관자로 한 장례지도사를 선택했다. 그는 "고시원에서 누군가 사망하면 장례를 도와줬던 장례지도사에게 나의 장례를 부탁했다"며 "연락할 수 있는 가족은 아들과 모친뿐인데 둘 다 캐나다에 있어 나 역시 한국에선 연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장례지도사에게 '아들에게 사망 소식을 전해달라'는 유언을 미리 남기기도 했다.
박씨도 처음부터 연고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들과 노모 외에도 아내가 있었지만 2020년 보이스피싱 사기와 부동산 사기로 전 재산인 6억원을 잃게 되면서 이혼했다. 아들마저 모친이 있는 캐나다로 넘어가면서 그는 홀로 남겨졌다.
박씨는 "허리, 목 등 온몸이 안 좋은 상태로 매일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데 건강이 악화하면서 나도 결국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고시원에 무연고자, 독거노인들이 정말 많고 이들을 보면서 당장 연락할 가족이 없는데 죽으면 장례는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현재는 고시원에서 지내는 이들에게도 사전 장례주관자 지정을 권하고 있다. 박씨는 "사업에 실패하거나 건강이 안 좋아 밖에도 잘 안 나가고 고립되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혹시 모를 상황에 사망하게 되면 누가 장례를 치러줄지 정도는 정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했다.
박씨는 "고시원에 지내는 분들이 사망하면 대부분 공영장례를 치르는데, 빈소에 과일 2~3개 정도 올라가는 게 전부더라"면서 "개인적으로는 마지막 가시는 길인 만큼 음식이 조금이라도 더 올라가길 바라는 마음에 장례를 치러줄 이를 지정하라 권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현재는 자조모임을 만들어 수급자나 무연고자들끼리 조금씩 돈을 걷어 장례식 때 과일이라도 하나 더 올려놓으려 한다"고 덧붙였다.
부산 동구에서 시작된 사전 장례주관자 지정사업은 부산 전역으로 확대됐다. 현재까지 20명이 사전 장례주관자 지정을 마쳤다. 다만 장례주관자가 먼저 사망하거나, 신청자가 오랜 시간 뒤 사망해 연락처 변경 등으로 연락이 끊길 경우 제도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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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관계자는 "내년 초 관련 협의회를 열어 향후 운영 계획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며 "제도가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홍보부터 관리 방안 등 많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최영찬 기자 elach1@asiae.co.kr
유병돈 기자 tamond@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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