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전쟁터의 시간, 52시간에 갇히다]
⑤시간 제한 없이 몰입 개발 가능한 나라들
美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 시행
英 옵트아웃 제도로 48시간 이상 근무
日 고도 프로페셔널 "정부 적극 지원"
#. "저랑 주100시간 이상 근무하면서 미국 기업들 다 이기고 글로벌 1등 제품 개발을 하고 싶은 사람을 찾습니다. 연봉은 현금 2억, 스톡옵션 추가입니다."
미국 뉴욕 현지에서 일할 임원급 개발자를 찾는 구인 공고가 한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업계를 뒤흔들었다. 홍현 프로젝트 플루토 대표가 지난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링크드인을 통해 올린 글은 주52시간제를 지켜야 하는 한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구인 공고를 올린 지 1년만인 올해 프로젝트 플루토는 월가에 인공지능(AI) 에이전트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으로 성장했다. 미국 대형 헤지펀드인 밀레니엄,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 등이 주요 고객이다.
주100시간은 168시간(7일x24시간)에서 식사와 수면 시간(하루 평균 약 9.7시간)만 빼면 맞출 수 있는 근로 시간이다. 그만큼 임직원이 함께 몰입하면 단기간 연구개발을 통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게 홍 대표의 생각이다. 홍 대표는 "주52시간 규제 등 한국의 근로기준법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자멸을 촉진하는 후진국적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강하게 질타했다.
주요 국가들은 AI 산업 발전을 위해 획일적인 근무시간을 적용하는 대신 특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라면 근로시간 제한을 허용하지 않거나 추가 임금 없이 근로가 가능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화이트칼라 이그젬션' 제도를 통해 고소득 근로자에 한해서는 근로시간 제한을 적용받지 않도록 한다. 연간 소득 약 10만7000달러 이상(약 1억5000만원) 이상인 고소득 근로자가 대상이다. 공정근로기준법(FLSA)에 따라 개발자 직군을 포함해 IT·금융·연구개발 등 업무 특성상 근로시간 측정이 어렵거나 성과 중심 보상이 필요한 분야에 적용된다. 가장 큰 특징은 기업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인력을 투입할 수 있어서 생산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점이다.
유럽에서 AI 분야 선두권에 있는 영국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초과 근무를 자율적으로 선택하는 제도를 시행 중이다. 영국은 주48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있는 '옵트 아웃(Opt out)' 제도를 도입했다. 옵트 아웃 제도는 고임금 근로자로 구분하는 미국과는 달리 적용 대상에 대한 제한이 다소 적은 점이 특징이다. 소득 제한 없이 만 18세 이상 모든 근로자가 선택 가능하며 기간도 정해지지 않는다. 대신 자발적이어야 하며 서면으로 근로자의 동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구두는 효력이 없다. 다만, 야간근로는 8시간 상한선 이상으로 불가능하며 건강검진을 의무화하는 등 건강권 보호 조치도 함께 보장해야 한다. 근로자가 만약 옵트 아웃 제도 시행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해고하면 법적 조치를 받게 된다.
일본은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통해 초과근무를 보장한다. 연봉이 1075만엔(약 1억원)이상인 고소득자가 대상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36개 사업장에서 1390명이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를 사용했다. 노사위원회 결정과 근로자 개별 서면동의, 건강관리확보 조치 등이 포함돼 있다.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는 다양한 직군과 직종에서 활용된다. AI 분야는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 중 연구개발 부문에 포함돼 초과근무가 가능하다. 이 밖에도 금융상품 개발, 펀드매니저·트레이더·딜러의 업무, 증권 애널리스트 및 컨설턴트 업무를 등이 포함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2일 경기 성남시 판교의 한 오피스텔에서 'K-혁신' 브라운백미팅에 참여해 판교 IT개발자 2030 직장인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2025.5.12 김현민 기자
권혁욱 니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해당 제도는 근로시간이 아닌 성과를 기준으로 평가하기 위한 '일하는 방식 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됐다"면서 "AI 개발을 위해서도 고도 프로페셔널 제도 활용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일본 정부는 중점 육성 분야에 AI를 포함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고 있다"며 "기업과 대학 역시 이에 발맞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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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일본 AI 업계 연봉이 높은 편은 아니라서 활용은 다소 제한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창민 한국외국어대학교 융합일본지역학부 교수(한일정책연구센터 센터장)는 "제도상 신기술과 신상품 연구개발 업무가 대상 직무로 포함돼 있어 이론적으로는 AI 연구자나 첨단기술 인력이 제도를 활용할 수 있지만, 노사위원회 설치와 건강관리 시간 기록 등 복잡한 행정 절차를 AI 기업과 스타트업이 감당하기는 어렵다는 점은 걸림돌"이라고 했다.
이현주 기자 ecolhj@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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