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경제 양낙규 기자] 3년 1개월간 한반도를 피로 물들인 6.25전쟁. 북한의 기습남침으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남한 군 당국도 석 달 전부터 징후를 감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지휘부의 판단 잘못으로 전쟁초반부터 남한군은 속수무책 당했다.
25일 국방부 국사편찬연구소가 펴낸 한국전사통계자료집에 따르면 1950년대 접어들면서 군 당국은 "북한의 전쟁준비는 완료됐고 남침은 시간문제"라는 취지의 발표를 반복했다.
미국의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도 같은 해 3월 10일 워싱턴에 보낸 비밀정보보고서에서 "최근 입수된 정보에 의하면 북한이 6월에 남한을 침략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이승만 대통령도 군 당국에 "5~6월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고 경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군 당국은 5.30 선거의 혼란기를 틈타 남침이 이뤄질 것이라고 판단해 전군에 비상경계명령을 내렸다.
북한은 그러나 6.25일 남침했다. 북한군의 남침 징후가 포착됐고 남한군이 비상경계령이 내려진 상황에서 남침은 어떻게 가능했을까?
군은 경계명령이후 북한군의 특별한 징후가 없다고 판단해 6월 23일 24시를 기해 비상경계령을 해제했다. 이어 24일 토요일 전군의 30%가 외출·외박을 나가고 농번기를 맞아 정기휴가를 떠났다.
그러나 육군본부 내부에서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6월 24일 오전 육군본부에서는 22~23일 입수된 첩보를 분석한 결과 "북한의 전면공격이 임박한 것으로 보이며 이날이나 다음날이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
육군본부는 결과를 토대로 총참모장과 일반참모들의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그러나 상황장교들이 제기한 비상경계령 해제의 즉각 중지, 휴가 및 외출중지 등 건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다만 지휘부는 첩보대를 포천, 동두천, 개성 등지에 파견해 적정을 살피고 다음날인 25일 아침 8시까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특히 24일 밤에는 육군회관 장교구락에서 각급 참모 및 지휘관들이 밤늦도록 연회를 벌였다. 지휘부의 한순간의 판단착오로 6.25전쟁 초반 속수무책 당하고 만 것이다.
양낙규 기자 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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