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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우의 경제레터] ‘삶과 죽음의 경계’

시계아이콘02분 25초 소요

요즈음 죽음을 대하는 모습들이 곳곳에서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는 온 국민들을 비통하게 했고 최근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난 젊은이들의 잇단 자살은 생명의 고귀함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대법원이 국내에서 존엄사를 인정하는 첫 판결을 내리기도 했습니다.


대법원은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70대 환자의 가족이 세브란스병원을 상대로 낸 ‘무의미한 연명치료장치 제거 등 청구소송’에서 인공호흡기를 떼라고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습니다. 대법원은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행위 중단 여부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나 짧은 시간 내에 사망에 이를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로 진입한 것으로 평가되며 연명치료를 강요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것”이라고 판결 이유를 밝혔습니다.

1997년 12월 뇌를 크게 다쳐 회복 가능성이 없었던 환자의 가족 요구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켜 숨지게 한 의사를 살인방조죄로 처벌한 ‘보라매병원 사건’과는 대비되는 것으로 사망단계에 들어섰는지의 여부가 존엄사와 살인방조죄의 차이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기념비적인 판결은 1976년 미국 뉴저지주 대법원의 ‘카렌 퀸란 사건’으로 “담당 의사가 카렌의 회생가능성이 없고 인공호흡기를 제거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후견인과 가족이 이에 동의하면 이들은 병원 윤리위원회에 자문할 수 있다. 그리고 자문위원회도 이에 동의하면 인공호흡기를 제거할 수 있으며 관련 당사자들은 민사상, 형사상의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습니다.

사실 국내 여러 대학병원들은 말기암 환자가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 등과 같은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고 서명하면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서울아산병원에서는 매년 150~200명의 말기암 환자가 심폐소생술 거부 서약을 통해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고 한 언론은 전하고 있습니다.


위키백과에 따르면 한국에서는 안락사를 존엄사와 크게 구별하지 않고 쓰고 있다고 나와 있으나 이들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수단에 따라 회복이 불가능한 환자로부터 생명연장 장치를 제거하는 소극적 안락사 즉 이를 존엄사라 하며 불치병의 환자나 아주 고통이 심한 환자 등에게 의사가 약물을 주사하는 등의 방법으로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적극적인 행위를 안락사라 구분합니다.


안락사가 합법화된 미국 워싱턴주에서는 지난 21일 60대 말기췌장암 여성 환자가 죽기 직전에 고통과 정신을 황폐하게 하는 점점 더 강력한 약물이 투여되는 것을 두려워 해 의사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맞이했다고 AP통신이 전하고 있습니다. 환자는 전날 성명을 통해 “나는 매우 정신적인 사람이다. 죽음의 순간 의식을 갖고 투명한 마음으로 있는 것이 나에게는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답니다. 스스로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사회는 지금까지 죽음을 정면으로 다루기보다 못 본 척 외면해 왔습니다. 가족이나 자신의 죽음이 다가왔을 때 그들의 고통을 보면서도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인위적인 방법으로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노력 아닌 노력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생명권’이 있는 것처럼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존엄권’도 있습니다.


신부 이자 죽음학자로 널리 알려진 알폰스 디켄 교수는 죽음은 하나의 사건이라기보다는 죽음을 맞이하는 과정 즉 ‘죽어감’으로 이해해야한다고 강조합니다. 디켄 교수는 저서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서 죽음에서 가장 중요한 행위자는 환자 즉 죽음을 눈앞에 둔 당사자로 주변인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을 함께 해 주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또 환자는 자율성을 존중받고 자기 결정을 하길 원하며 불필요한 생명연장보다는 품위 있는 ‘위엄’을 가지고 생을 마감하길 바라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죽을 때도 ‘죽음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스스로 생명을 버리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생명은 경이로운 것이며 고귀한 것입니다. 지속될 수 있는 인간의 생명을 자기결정권을 내세워 자의든 타의든 함부로 끊는다는 것은 죄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특히 어떠한 경우라도 살아있는 것이 더 큰 존엄성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자살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미화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세계적으로 해마다 100만명이상의 사람들이 자살로 목숨을 끊는다고 합니다. 물론 그들에게 자살을 명예롭게 여기는 일본의 ‘할복’과 같은 사례가 있는 등 수많은 사연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생명은 무한하며 삶 자체가 경외로운 것입니다. 한 학자는 자살을 과도한 이기주의로 인한 사회와의 유대감 약화에 따른 ‘이기적 자살’과 사회에 대한 과도한 책임에서 비롯된 ‘이타적 자살’, 가치관 혼란에 기인하는 ‘아노믹 자살’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살의 행위가 어떤 유형에 속한다는 것보다 행위 자체에 대한 정당성부터 확보돼야 합니다.


존엄사든 자살이든 생명을 다해 죽은 자연사든 죽음에 이르는 길에서 사람들은 많은 회한과 두려움, 반성, 역설적으로 희열까지 모든 희로애락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러나 살아온 길을 헛되게 하는 죽음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죽음이 횡횡하는 세상, 많은 국민이 한 죽음을 애도하는 아침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생각해 봤습니다.






강현직 논설실장 jigk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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